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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사 때 다섯 자매가 다 모였다. 고향에서 우리 다섯 자매는 유쾌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제사 음식을 만들면서 우리는 그 동안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수다 주머니부터 풀었다. 그런데 부추전을 부치던 넷째 언니가 뜬금없이 어릴 적에 자기가 다섯 자매 중에 일을 제일 많이 했다며 뒤집개를 탁 놓는 것이었다. 더 웃기는 건, 나머지 세 언니들도 질세라 내가 더, 내가 더 하면서 반박을 하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야! 나는 40일 동안 모를 심으러 다녔는데' '나는 여름 방학 내내 소 먹이러 다녔다구' '나는 소꼴을 베러 다니느라 손이 성할 날이 없었는데…. 근데 우리 소는 왜 그렇게 말을 안 듣고 미련했나 모르겠어'잠시 딴 길로 샜던 우리의 수다는 소 이야기로 모아졌다. 그래. 소. 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집 안에서 소를 기르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소가 있었던 것 같다. 기억하는 능력이 생겼을 때부터 소가 있었으니 우리의 이야기에 소가 자주 등장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아무튼 그 때는 집집마다 소 한두 마리씩 키우던 때였다. 재산을 불리기에 소만한 것이 없었고, 특별한 집 빼고는 소가 재산 목록 1호였을 시대였다. 아버지도 소를 한두 마리 키우셨는데 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쯤에는 8마리로 불었다. 논에 계시는 날마다 외양간에 계시는 날이 더 많아졌다. 아버지의 몸에서 나던 구수한 소똥 냄새를 나는 아버지의 냄새라고 생각하고 자랐다. 송아지 낳는 것을 직접 보았고, 송아지가 첫 걸음마를 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작가가 되어서 동화에 소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썼는지 인세의 절반은 소에게 줘야 할 만큼이다. 한 때는 소 이야기를 나만큼 잘 쓸 작가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언니들은 아버지가 소를 키우던 모습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나만 기억하는 것이 있다. 소와 아버지가 영원히 작별하던 일이다.

 언니들 모두 먼 곳으로 시집을 가고 혼자 찬밥처럼 시골에 남아 부모님과 지낼 때였다. 그 무렵 마을에 부르셀라라는 소 전염병이 돌았다. 공기를 통해서 전염되는 것이라서 막을 재간이 없었는데 그병으로 인근 소가 몇 마리씩 죽어 나간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집 외양간 소들은 그 부르셀라에 감염됐다. 처리 방법은 간단했는데 모두 살처분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소들보다 먼저 자리에 눕고 말았다. 평생을 함께 해 온 소를 죽여 묻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인정하지 못하고 병이 들었다. 소도 소지만 아버지의 모습이 하도 딱해서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아버지는 결혼과 동시에 할아버지한테서 소 한 마리를   받았다고 한다. 그 때부터 소를 자식처럼 키웠는데 어느날 갑자기  병에 걸렸고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건빵도 드시지 않고, 입을 다무셨다. 엄마는 소보다 먼저 초상을 치게 생겼다고 난리였다. 나는 아버지가 등을 돌리고 낡은 벽지를 하루 종일 바라보는 것을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뒤부터 소를 키우지 않으셨다. 전염병이 잠잠해졌지만 소와 연을 끊어버리셨다. 빈 외양간을 한 동안 두더니 이듬해 봄에 허물어 벼렸다. 우리는 소가 살았던 흔적을 그렇게 지워버렸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우리 동네에는 젊은 농부들이 농사를 버리고 본격적으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막사가 농 한 가운데 띄엄띄엄 생겨나고 집집마다 한두 마리쯤 있던 소는 모습을 감췄다. 나의. 아니 우리 자매의 소에 대한 기억은 여기가 끝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소 이야기를 빼먹을 수가 없다. 며칠 전 시골에서 남편과 함께 소를 키우는 친구의 SNS에서 글 한 편을 읽고 코끝이 찡했다. 친구 남편이 소를 팔기 위해 우시장에 갔다가 소를 팔지 못하고 다시 데리고 왔다고 한다. 차에 실을 때부터 가지 않으려고 드러눕더니 우시장에 도착해서도 차에서 내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때려도 소용이 없고 물리적인 힘을 가해도 안 돼 결국 소를 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살던 막사로는 유유히 들어가더라나. 경매인들에게 하도 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로도 기분 좋게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는 사람이라면 안방에 데리고 하룻밤 재워주며 사과를 하고 싶더라고 했다. 소는 어쩐지 정이 가고 선한 마음을 지녔을 것 같은 짐승이다. 울음 소리도 그렇게 눈동자도 그렇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우리 자매에게 눈을 흘기고 물건을 집어던지던 기억은 있지만 아버지라는 이름은 소의 등처럼 부드럽고 따듯하기만 하다.'누구 한 사람이 일을 많이 했으면 다른 누군가가 덜 힘들었겠지' 큰 언니의 이 한 마디로 소 이야기는 일단락되었고,우리의 화제는 다른 곳으로 흘렀다. 소 이야기를 들으면 아버지 생각이 나고, 아버지 생각을 하면  소가 떠오른다. 나는 지금 아버지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소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제삿날. 우리는 그리움을 유쾌하게 풀어놓고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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