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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란 구호로 화려하게 출범한 이명박 정권이 넉 달 남짓 만에 '제2의 IMF임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라가 멍들고 있다. 지나온 4개월이 4년 같다느니 하지만 앞에는 무려 4년 7개월이나 남아 있다. 문제는 창창한 이 기간에 이명박 정권이 뭔가 하겠다고 할 때마다 나라의 둑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차라리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럴 사람들이 아니니 삼복더위에 숨이 막힌다. 이명박 정권은 지금 사면초가의 신세다. 국민들의 지지가 끝 모르게 추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애지중지하던 미국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과거사에 발목을 잡히지 않겠다고 선언한 대일 외교는 마음 준 뒤, 뺨 맞듯이 독도의 일본 고유영토 명기라는 현실에 맞닥뜨렸다. 이 모든 실책과 혼선은 준비 부족과 오만의 탓이다.


 오만의 극치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최근 한 신문 인터뷰에서 "임기 100일의 성적을 매기면 낙제점"이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아직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히딩크 전국가대표축구감독식으로 "아직도 (승리에)배가 고파요"라는 말은 최후의 결정타였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잘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배가 고프다느니 만족하지 못한다느니 하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근거 없는 자기확신과 자아도취, 상황파악을 못하는 것은 정권의 불행이기 전에 국민들을 너무나도 피곤하게 만든다. 일본에서 열린 선진8개국(G8)확대정상회의장에서 부시는 이명박의 어깨를 짚고 알 듯 모를 듯 미소 짓고 있는데 대통령은 파안대소하고 있다. 이를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미국산 쇠고기시장을 통째로 내준 것도 모자라 검역주권까지 포기해 그토록 홍역을 치렀으면 그렇게 경박스럽게 웃을 일이 아니다. 백보를 양보해도 챙길 것이라도 챙겼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부시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임기내)FTA의회통과를 약속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례적인 수사였다. 줄 것 다 주고 국민적 자존심까지 내다 팔았는데도 건질 것은 하나도 없는 빈 깡통 소리만 요란한 한미외교다.


 대일외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을 만나 악수를 하고,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며 말을 한 것도 제 발등을 찍은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노회한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교과서 해설서에 명기하겠다며 뒤통수를 치고 나왔다.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잃는 '등신외교'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어처구니 없는 한일외교다. 대북관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전 정권의 대북성과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들이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무식이 용감하다. 아무리 정치적 기조가 다르고 밉더라도 지금까지 힘들게 만들어온 남북관계를 냉전 방식으로 되돌린 것은 엄청난 실책이다. 부시정권이 '악의 축'이네 뭐네 하다 실패한 것을 뻔히 보고도 비현실적인 '비핵·개방3000'을 대북정책이랍시고 내건 것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오락가락 엇박자 스텝 또한 화려하다. 금강산관광객이 피격당하는 날 국회에서 대북 대화를 제의하는 대통령의 무신경이라니. 그래도 피격사건과 대화제의는 별개라고 큰소리치더니 보수 세력이 무원칙한 대북정책이라고 비난하자 1주일 만에 다시 180도 돌아서 강경일변도로 회귀했다. 정권차원의 대북채널이 꽉 막혀있는 처지에 과연 치밀한 계산을 하고 저렇게 일방적인 대시를 하고 있나 또 걱정이다. 인사도 현재진행형이다. 경제난을 초래한 강만수기획재정부 장관을 유임시키고 최중경 차관을 희생양 삼아 '대리경질'한 7·7개각이나,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입증한다며 미8군 영내에서 긴급 공수한 18개월짜리 암소를 청와대 식탁에 올리는 참모들의 모습에서 차라리 '쇼를 하라, 쇼를!'이라는 광고 카피가 절로 떠오른다. 정말 이렇게 하고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권력핵심부의 머릿속을 좀 들여다보고 싶다. 이제는 막가자는 판인지 각 언론기관과 공공기간 앞마당에는 대선 공신들이 타고 내린 낙하산이 즐비하다.


 이명박식 실용주의의 본질이 이런 것인가. 그러고 보니 국정철학이나 원칙, 비전이란 게 애초에 있었는지 조차 궁금하다. 독주형 리더십과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정치적 타산만 따지는 셈법을 실용주의로 호도하면서 국정철학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는 않는가. 잘 모르면 충고라도 귀담아 들으면 좋으련만 귀를 틀어 막아버렸는지 본 척 만 척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말 심기일전하여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서두르지 말고 오히려 냉정하고 차분하게 국익을 위한 선택들을 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으로 뽑아 준 국민의 뜻을 받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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