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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수향 시인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에 열중해 있을 때 저쪽에서 왁자하니 웃음소리가 터졌다. 호기심이 발동해 동작을 멈추고 고개 드니 몇 분의 선생님과 학생 한 명이 이야기에 빠져 있다. 얼핏 알아들을 수 없는 '카톡친추' 란 말이 다시 날아온다.  카톡친추? 묻는 내게 '카카오 스토리 친구 추가'라는 말이란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줄임말을 의아해하다 설명을 듣고서야 웃었단다. 그들은 재미삼아 따라 해보기도 하고 웃음으로 넘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참 씁쓸해졌다.

 쌍둥이도 세대 차를 느낀다는 농담을 들은 적은 있지만, 20대가 10대의 말을 설명 없이 소통할 수 없다는 말에 나는 거기에 선 모든 젊은이들이 다 벽처럼 아득해 보였다. 매스컴을 통해 겨우 익힌 단어 버카충, 안습, 볼매, 십장생 등이 무겁게 떠오른다. 버스카드 충전, 안구에 습기차다, 볼수록 매력 있다, 십대부터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 란 말의 줄임말이란다.

 학생들이 쓰는 줄임말은 경제관념에서 출발했다고 어떤 이는 말한다. 핸드폰을 사용할 때 문자 몇 자에 돈이 불어나가는 것에서 생각해 낸 것이 줄임말이란다. 필요에 의해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말이라 하지만, 풀지 않으면 도저히 소통 되지 않는 줄임말은 듣기 난감하다. 외국어처럼 어렵고 낯설고 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말들이다.

 문제는 학생들만 줄임말을 쓰는 것이 아니고, 매일 몇 시간씩 접하는 TV에서도 예외는 없다. '이만갑'이니 '해품달'이니 '구그달'이니 프로그램 제목을 이렇게 줄여서 말하니 그 프로를 보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단순히 언어의 변천 과정이겠거니 생각하다가도 어느 세대 간도 소통되지 않는 날이 오면 그때는 어쩌나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 안에 존재하는 완전 불통의 언어 몇 개를 떠올리는 자체는 과장되고 호들갑스러운 염려다. 그러나 어원까지 사라지고 난 뒤의 난감한 상황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진다.

 문이 아무리 많아도 열지 않으면 벽이라 한다.(아프니까 청춘이다 분문에서 인용). 말이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를 벽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문을 두드려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노력도 하고, 더 늦기 전에 소중한 우리 한글을 정비하는  적기가 지금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또 불편하게 들리는 말 중 하나는 줄임말도 외국어도 아닌' - 같아요 '라는 말이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쓰는 '-같다'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같아요는  그런 뜻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쓰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하늘은 청청 푸르고 대숲은 시원한 바람소리를 내고, 들은 억새 빛으로 깊이 물들어 간다. 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 하자.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이것을 말로 옮길 때 '하늘은 청청 푸른 것 같고, 대숲은 시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것 같고, 들은 억새 빛으로 깊이 물들어가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어미 - 같아요가 사족으로 붙어있다.

 여기에서는 풍경을 보는 눈이니 -같아요가 무리한 사용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느낌을 물어도 상쾌한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아요, 무서운 것 같아요, 싫은 것 같아요, 사랑하는 것 같아요 한다. 내가 느끼는 것조차 -같아요로 표현한다. 처음엔 단순 유행일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우리 젊은이들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데 지나치게 소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것을 SNS 폐해 때문이라 나름 생각해 보았다. 소위 댓글이 주는 폐해. 좋아요 하면 그게 좋으냐, 싫어요 하면 그게 싫으냐 그 정도가 아니고, 도를 넘어서는 댓글 때문에 유명인들이 위기에 몰린 예가 보도 된 것이 한두 건이 아니었다. 그걸 바라본 젊은이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조심스러워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들은 '-같아요' 라는 새로운 우산 하나를 마련하고 자신의 감정을 살짝 가린다. 안타깝다.

 쏟아지는 외국어에, 줄임말에, 은어에 병들어가는 한글을 바라보는 심중에 자신의 감정 표현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젊은이들의 말까지 들으면 답답하고 불편한 것을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이 염려가 단순 노파심이기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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