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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태화종합시장이 태풍 '차바'로 역대 최악의 침수피해를 입은지 16일 만인 20일 다시 5일장이 열린 가운데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시장 안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노윤서기자 usnsy@

"고맙습니다.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울산 중구 태화종합시장에는 절망을 딛고 희망을 찾는 상인들의 의지를 담은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 5일 제18호 태풍 '차바'로 역대 최악의 수해를 입은 태화종합시장은 보름만인 20일 다시 오일장을 열었다. 시장은 다음 달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상인들의 의욕과 중구의 상권 살리기 의지로 인해 예상보다 일찍 문을 열었다.
 
# 아침부터 장사 준비로 분주
아직도 수해 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점포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는 등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상인들은 분주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은 낀 한 상인은 생선을 손질하고 있었고, 찜통에 밤이나 땅콩을 삶은 모습은 여느 오일장과 다름 없었다.
 노점에는 가을걷이한 마늘, 붉은 고추, 총각무 등 채소와 울산 특산물인 배와 각종 과일들도 손님을 기다렸다. 시장의 대표 먹거리인 어묵, 국화빵, 꽈배기 등도 빠지지 않고 진열됐다.
 여느 시장과 다름없이 활기찬 모습이었지만, 상인들에게는 수심이 가득차 보였다. 군데군데 장사를 시작하지 못한 비워 있는 점포 때문이다. 이날 상가 300여 곳 가운데 200여 곳이 문을 열었다.  
 오일장이 개장하자 20∼30여년 간 시장에서 함께 장사를 해 온 노점상과 가게 상인들, 단골손님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로했다. 
 빵을 파는 노점상 김재영(56)씨는 "이달 말까지 장이 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재료를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시 장사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피해가 심각한 상인들은 내부 정리를 하는 데 시간을 보내느라 장사를 못하고 있다. 하루 빨리 복구가 완벽하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발, 양말 등을 판매하는 노점상 한정숙(56·여)씨. 그는 "많은 손님들이 찾았지만 시장은 군데군데 빈 점포 탓인지 예전과 같은 활기는 돌지 않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안 보여 마음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찾은 김미경(45·여)씨는 "시장 상인들이 항상 웃는 얼굴로 물건을 싸게 팔아 시장을 찾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며 "아직까지 피해보상 지원이 제대로 안 돼 수심에 가득찬 상인들을 볼 때 마음이 한 켠이 쓰린다"고 안타까워 했다.

300여 상가 중 200여 곳 문열어
서로 안부 물으며 상처 보듬기도
현대차 노사 온누리 상품권 사용
중구 공무원 400명도 점심 해결

# 시민들 힘내라며 용기 북돋아
그래도 시장이 개장했다는 소식에 평소처럼 다시 태화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상인들에게 힘을 줬다.
 중구 태화동에 사는 김미선(62·여)씨는 단골 채소 가게를 찾아 "언니 정구지 한 단에 얼마하는교"라고 물었고, 평소처럼 채소가게 주인 임명숙(65·여)는 "5,000원인데 마 4,000원에 가져가라"고 했다.
 김씨는 예전에는 가격을 깎아주면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이날은 달랐다. "5,000원 다 받으소"라며 임씨의 손을 잡고는 돈을 꼭 쥐어 줬다. 임씨는 "아이고 내가 수해 입었다고 불쌍하나"라며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이말자(40·여)씨는 "예전부터 태화시장 빵가게 단골이다. 그동안에 여러 곳의 장을 가 봤지만 이 빵집만큼 정이 가는 데는 없었다"며 "태풍으로 한동안 빵가게 아저씨를 보지 못해 아쉬워 일부러 시장에 나왔다"고 했다.
 시장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울주군 등 타 지역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찾았다.
 이날 시장에서 생선을 산 이선자(67·여)씨는 "울주군 남창리에 살다보니 인근 전통시장을 이용하고 있는 데, 오늘 태화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20여 년만에 찾아왔다"며 "시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추가로 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시민들의 응원 덕분일까. 상인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되찾아갔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근석(45)씨는 "태풍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손님들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예전의 활기찬 태화시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상인들도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 "모든 역량 동원 상인 지원 총력"
이날 현대자동차 노사와 중구 공무원, 새누리당 등도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응원했다.
 현대차 노사 관계자와 현대차 봉사단 20여 명은 시장 내 2곳의 떡집에서 떡 700세트를 산 뒤 시장 상인들에게 전달했다. 이들은 전통시장 상품권(300만 원 상당)을 과일, 채소, 육류, 수산물 구입과 시장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데 사용했다.
 윤갑한 현대차 사장과 박유기 노조위원장은 최근 타결한 임금협상에서 노조원들에게 159억원의 온누리상품권을 전달하기로 한 만큼 이를 태화종합시장 등 피해가 컸던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구도 이날 구내식당을 일일휴업하고 직원 400여 명이 태화종합시장과 우정시장 내 식당을 찾아 점심 식사를 해결했다.
 새누리당 울산 중구 당협위원장인 정갑윤 의원과 당협위원 100여 명은 시장을 찾아 각 상점과 노점을 돌며 상인들이 마수걸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박문점 상인회장은 "보름 만에 오일장이 다시 설 수 있을 만큼 복구가 되도록 전국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특별재난지역에 선정되지 않아 마음이 아프지만 정부와 중구, 국회의원들이 한 마음으로 상인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 준다니 믿고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박성민 중구청장도 "태풍 피해로 실의에 빠진 상인들을 위해 귀한 발걸음을 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특별재난구역에 지정되지 못했지만 수재의연금과 기금 등 피해 상인들을 도울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지혁기자 uskjh@·박재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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