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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본다.
 내가 사는 곳은 중구 태화동의 한 주상복합. 태화시장에서 23년째 야채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아침에 장을 보려고 지하주차장에 내려갔을 때 만해도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뉴스를 건성으로 들었다.
 마침 새로 산 차는 놔두고 으례 장을 보러갈 때 이용했던 아내의 낡은 차를 몰고 나왔다.
 농수산물시장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집으로 향할 때에도 앞으로 닥쳐올 재앙을 생각조차 못했다.
 태화다리에서 발이 묶였을 때만해도 설마설마했다.
 결국 "지하 주차장에 물이 가득 찼다"는 아내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서야 머릿속이 하얘졌다.
 바지를 걷고 걸어서 아파트에 갔을때는 온통 물난리였다.
 큰 맘 먹고 할부로 산 새차는 찾을 수 없었다.
 아차 싶어 가게로 뛰어갔지만 아예 접근조차 못했다. 시장에 주차해 놓은 이웃 박씨의 차는 둥둥 떠다니고, 가게는 완전히 물에 잠겼단다.
 아연실색,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끔찍한 참사의 아픔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는데 상인들이 집회를 한단다. LH가 혁신도시 저류지를 잘못 만들어 태화동이 물난리를 겪은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울컥하는 마음에 분풀이라도 할 요량으로 머리띠를 맸다.
 400명의 상인들과 함께 LH 앞에서 "책임지라"고 핏대를 세웠다.
 LH 관계자들은 면담자리에서 한 상인이 흥분해 욕설을 했다며 면담을 거부할꺼라 엄포를 놨단다. 그리고는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지겠다"고 되려 큰소리를 쳤단다.
 상인들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울부짖었다.
 하루 아침에 내가 겪은 피해와 고통을 그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다. 너희도 똑같이 당해보라고, 침착할 수 있는지.
 정부 지원도 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분위기가 태화시장을 엄습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는 일 뿐이다. 그나마 복구현장에서 함께 땀을 흘려 준 사람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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