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물의 나라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물의 나라
  • 울산신문
  • 승인 2016.10.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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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나라
                                                            김정숙

강물 같은 노래가 흐르네
노래 같은 강물이 흐르네
읽고 또 읽고, 읽고 또 읽어
수 백, 수 천 번 되풀이한 자리에
우르르 물소리 몰려드는 저녁
굽이진 숲 속 작은 암자에서
어머니 허리 굽혀 촛불을 켜던
그 곳은 졸졸졸 물의 나라
나는 들풀처럼 축축해져서
푸른 꽃 한 송이 피울 것 같네
그녀의 기도는 평생 되풀이어서
싸리 꽃 유난히 붉었던 날에도
도돌이표 한결같이 돌아갔을 것이네
한결같음이 만드는 기가 막힌 리듬을
시인이여 그대는 아시는 가
수 백, 수 천 번을 되풀이해야 생겨나는
구성지고 구성진 그 노래를 정녕 아시는 가
산 전체가 뿌리까지 전율하는 저 슬픈 리듬이
그녀가 평생을 두고 써 낸 시 한 편임을
어린 시인아, 그대는 아시는 가
치마폭처럼 몸을 감싸던 은밀한 습도를
이제는 내가 품어 가고 싶네


● 김정숙 시인 - 2005 '한맥문학' 등단. 2016 열린 시학 신인상. 울산문인협회 회원. 봄시 동인. 2014 '울산문학' 올해의 작품상. '두레문학' 편집주간.
 



▲ 류윤모 시인
어느 친수(親水) 공간이든 인파가 복작거려 발디딜 틈 조차 없다, 여름철엔. 저절로 물에서 비롯된 생명임을 본능으로 알고 찾아가는 것. 강물 같은 노래가 흐르고 노래 같은 강물이 흐르는 초록의 파라다이스. 뭇 생명들의 마른 목을 가감 없이 적시며 다투어 내 미는 빈 그릇마다 철철 넘치도록 채워 주는 물의 나라. 수백 수천 번을 읽어도 눈이 시원하게 새롭게 읽히는 온갖 생명들의 은혜의 나라. 아마존 어디쯤일까.
 물의 성질은 가변형. 가변형성의 물질은 둥근 그릇이건 세모그릇이건 모난 그릇이건 어떤 그릇에도 안정적으로 쉬이 담긴다. 어떤 물도 한사코 안 담기려 버티거나 발버둥치지 않는다. 물의 나라는 치자도 피치자(被治者)도 없이 주체적으로 다스리고 다스림 받을 뿐. 이익을 놓고 분별없이 다투거나 부딪히는 일이라곤 없다. 일만의 눈부심이 평등하다. 물의 세계엔 죽고 죽이는 이념 따위가 있을 수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로소 광활한 바다에 이르러 각자도생이 아닌 함께 신나는 어깨춤으로 일망무제를 이룬다. 고해의 바다와는 담이라도 쌓은 듯. 좋아라 춤추는 푸른 물결. 혹여 시인은  노래만이 넘치는 화엄 세상을 꿈꾸고 있는 걸까. 오독(誤讀)이다. 시인은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풀이 해 왔듯 생명의 시원으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여성성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슬픈 역사로 점철된 이 땅의 가혹한 여성성. 한스런 노래가 되어 내려온 서러운 리듬의 행보.  강물 같은 노래가 암시하는 딸 하나 키워내는 숙명의 행보...진부한 듯하지만 물의 흐름을 변주하는 도치와 점층 기법을 활용한 리드미컬한 내재율이 중심을 향해 중첩해가는 메시지의 깊이를 더한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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