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마음의 집
글 김희경 / 그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창비

나는 '마음'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정신'이나 '생각'처럼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도 있지만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체온이 느껴지는 '마음'을 대체할 말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이라는 두 글자의 단어는 약방의 감초처럼 내가 쓰는 글 곳곳에 요긴하게 등장한다. 심장이나 뇌처럼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지도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있다고 믿는 정체불명의 무엇. 과학적인 논리로는 절대 풀 수 없는 표현 불가의 그것이 바로 '마음'이다.
 삶을 산다는 건 어쩌면 평생 '마음'을 단련하고 공부해 가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가을 하늘처럼 화창하다가도 순식간에 먹구름에 갇히고 비까지 내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변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폴란드의 그림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와 한국의 글 작가 김희경이 함께 그려낸 '마음의 집'은 우리도 알지 못하는 마음속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말이 별로 없는 엄마. 구석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 밥을 혼자 먹는 아빠에게도 마음은 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은 잘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시계를 보면 기쁘다가도 어느 날 시계를 보면 화가 나고 어느 날 고양이를 보면 슬프다가도 어느 날 고양이를 보면 즐거워진다. 더구나 나조차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많다.
 도대체 마음은 무엇일까. 이 책은 마음을 집에 비유했다. 큰집에 사는 욕심쟁이, 평생 한 집에만 사는 고집쟁이, 매일매일 집의 모양을 바꾸는 변덕쟁이처럼 마음의 집은 모양도 크기도 모두 다르다. 마음에 집에는 문이 있다. 어떤 사람은 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 어떤 사람은 활짝 열어두고 또 어떤 사람은 문을 아예 닫고 사는 사람도 있다. 마음의 집에는 방도 있다. 어떤 방은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어떤 방은 좁아서 겨우 자신만 들어갈 수 있다.

 마음에는 부엌도 있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멋지게 요리해 다른 사람에게 주지만 요리가 영 서툰 사람이 있다. 친구가 미워질 때나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때, 잘난 척 하고 싶고 싸우고 싶을 땐 마음의 집 속 화장실의 변기 손잡이를 꾹 누르면 된다. 마음의 집은 가끔 주인이 바뀌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불안과 초조가 마음의 집을 다스리고 또 어떤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의 집 주인이 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들이다. 그런데 작가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마음의 메시지를 전한다.
"네 마음의 집이 잘 보이지 않고 스러져 갈 때, 마음의 방에 혼자 있을 때, 창밖으로 비가 올 때라도 걱정하지 마. 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거든. 그 마음들이 네 마음을 도와줄 거야. 언제나 도와 줄 거야."

▲ 이서림 아동문학가
 책의 마지막장에는 거울 같은 은박지 한 장이 달려 있다. 스스로를 비춰보라는 의도인 것 같으나 아무리 열심히 비춰 봐도 내 모습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마음처럼 말이다. 사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그 대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가 원하는 모습의 마음의 집을 그려보자. 답답함에 갇혀있다면 마음의 창을 하나 더 내고,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쓰레기통 하나를 더 구입하고, 그리운 이가 있다면 방 하나를 더 마련하면 된다. 마음의 집이 너무 부실하거나 혹은 차고 넘쳐 궁궐을 이루어도 괜찮다. 어떤 모습이든 그 것은 내 '마음'이니까.  이서림 아동문학가·방송 구성작가.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