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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년

아픔은
혼돈을 회복시키는 절규이다
 
사월초파일 직지사 대웅전에 엎어졌더니
무릎팍 밀어내는 마루 틈에 끌이 솟아있다
풀 먹인 두루마기 동정 깃 같은 서슬에 놀라
봉정사 극락전이 어제처럼 상기되고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어깨 붙여 오고
병산서원 만대루가 시간을 다듬고 있다
 
만남을 당부하며 몸 내어 준 자리마다
상처 없는 아름다움이란 끝이 없다
들머리마다 조각난 바람으로 틈새 메우고
무딘 날 갈아 단단하게 갈무리 할 때마다
가슴 잘린 것들만 켜켜이 침묵으로 산다
필요한 동거가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혼자라서 서럽지 않는데 묻지 않는 답들이 지독하게 외롭다
삶의 단면을 잘라내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으면
옹이진 아픔마다 덧나는 망치질에 통증 덧붙여
손마디 차분하게 수평으로 무늬를 편집하고
등에 업힌 삶의 무게를 아무렇게나 내려놓듯이
오차 없는 파열음을 접목시키는 깊은 우려가
제자리 찾아내어 접었던 공간만큼 결을 만든다
 
무언이 토해 놓는 날선 끌을 잡고서
들판을 건너가는 그늘만큼 빠르게
키 낮은 앉은뱅이책상 하나 만들어
은밀한 접선을 시도하고 있다


● 허진년 시인 - 1957년 경북 안동 출신. 2004년 '월간 문학 21'로 등단. 시집 '누군가 내 가슴을 열어 본다면' '빨랫줄에 행복을 널다' 등.

▲ 류윤모 시인
■여행노트
끌은 목수가 나무를 다듬는 도구다. 끌의 존재감을 시공을 건너 뛰어 폭 넓은 역사 속에서 아우르며 끼우고 짜 맞추고 덧대어 헐거움을 조여 나가는 일련의 공정을 시인은 그려나가고 있다.
 점차 안개가 걷히며 모호했던 이미지가 이목구비를 갖추어 점차 구체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이 눈에 선하다. 처음부터 너무 선명하면 공정이 죽고 책상만 남는다. 앉은뱅이책상은 짜 맞추기 공정.
 목 공정에 문외한으로선 지난(持難)해 보이는 이 공정들이 변변한 도구도 없이 언어의 연금술만으로도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니 놀랍다.
 바둑의 첫 돌처럼 화두로 던진 '아픔은 혼돈을 회복시키는 절규다'에서 끌의 존재감을 은유로 드러내고 깎고, 다듬고, 짜 맞추는 공정의 살을 깎고 뼈를 다듬는 육화의 단계를 예시한다.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합일이 있고 자리와 역할을 나누는 일체를 이룬다는 설명하려들지 말고 그림으로 넌지시 보여주는 바람직한 시의 범례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다 말하지 않아도 은유로 체결하고 결성해 암시하는 시상으로 암전된다.
 어렴풋하던 짜 맞추기 공정들이 여러 단계를 거쳐 구체화되고 점차 앉은뱅이책상으로 다가 오는 듯. 내·외부와 시간과 공간, 역사성을 폭 넓게 아우르는 시인의 시선이 웅숭깊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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