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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감나무야
[에세이를 읽는 금요일]정임조 아동문학가
2016년 11월 03일 (목) 20:06:45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 정임조
아동문학가

마트 앞 진열대가 유난히 환하여 가보니 감이다. 그 옆에는 배, 무화과, 귤, 사과…. 과일이 넘쳐나는 가을. 보기에 참 좋다. 비싸든 싸든 내가 가꾸지 않은 이것들이 무슨 수로 내 손에까지 왔나 한참을 들여다본다. 마치 임금님 수랏상을 받은 농부처럼 감개무량하다.
 어렸을 적에는 과일이라 해봤자 감과 대추가 고작이었다. 감나무는 집을 빙 둘러 4그루, 먼 밭에 5그루가 있었고, 우물가에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과수원 수준은 아니지만 양도 제법 되었으나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 먹은 것, 깨진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약간이라도 상품 가치가 있는 건 장에 내다 팔았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노천명의 시 '장날'에 나오는 구절, '대추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가 딱 우리 집 풍경이었다. 대추를 장에 팔아서 추석 장을 보기도 했고, 고등어나 동태 몇 마리를 사오기로 했다.

 집에 제사가 없어서 좋은 과일을 구경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한쪽이 썩어 들어가는 사과나 상처 난 배를 먹은 기억은 있지만 다른 과일은 그림의 떡 아니 그림의 과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잘생긴 과일을 보면 감탄부터 한다. 신분상승이라도 한 기분이다. 귀족이라도 된 듯하다.
 이렇게 과일들이 미끈한 몸을 뽐내고 있을 무렵 내게 찾아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비염이다. 6년 전부터 비염을 앓기 시작했다. 약을 넣고 먹고, 침을 맞고, 주사를 맞고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해마다 가을이면 비염이 도진다. 남들이 알고 있는 비염 증세란 증세 모두 앓는다.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다. 비염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 특히 고약한 점은 코막힘으로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코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냄새를 잘 맡았는데 비염 때문에 아예 코가 없는 사람이 돼 버렸다. 사라진 양말 한 짝을 냄새로 찾는 건 기본, 아들 교복 깃에 코만 갖다 대도 며칠을 입었는지 다 안다. 우스갯소리로 딸이 아침에 받아간 돈으로 참고서를 샀는지 화장품을 샀는지 거짓말 냄새까지 맡을 정도였다.

 가을 향기가 한창인 이때 모과 향도 못 맡고, 국화 향도 못 맡고 있다가 최근에 비염이 끝났다. 시골 밭에서 들깨대를 찌는 중 들깨 향을 맡은 것이다. 들깨 향은 자극적이고 센 편인데 그 향이 올 가을 비염이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시골 가을 향기 중 내가 꼽는 1위는 단연 들깨 향이다. 들깨 향속에는 홍시 향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맘때 홍시가 떨어진다. 감 하나라도 귀했던 시절, 엄마는 새벽녘에 대나무 소쿠리를 쥐어주며 밭에 가서 떨어진 홍시를 주워오라고 했다. 들깨 밭 둔 덕에 오래된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말라 가는 들깨대 사이를 헤쳐 보면 홍시가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너무 익어 터진 홍시 향과 들깨 향이 한데 섞이면 세상천지 가을 향이 모두 거기서 났다.
 그 때에는 그 향이 좋다는 생각을 못했다. 시간이 지나는 사이 내 살점에 파고들었는지 잊을 수 없는 향이 되었다. 터진 홍시에서 나는 향. 들깨 향은 두 개지만 내겐 하나다.

 감이 친숙한 건 그나마 가장 풍족했기 때문이다. 진한 녹색으로 익어갈 무렵 일찌감치 따서 소금물에 재워놓고 떫은 기운을 없애 겨울 밤에 깎아 먹기도 하고,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꺼내 먹었다. 곶감도 만들어 먹었다. 겨울에 그만한 간식이 없었다.
 요즘에는 단감이 흔하지만 그때 단감은 꽤 값나가는 것이어서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가 단감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셨다. 단감을 따먹고 싶어도 행여 감이 몇 개인지 개수를 세어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꿈도 못 꿨다. 아버지는 감잎에 붙은 애벌레 숫자까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태풍이 불어서 단감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은 복 터진 날이었다. 농약을 치지도 않고 그저 감나무의 인심에만 의존하는 그런 때였으니까.
 지금은 감나무가 너무 늙어 씨알도 작고 열렸다가도 금방 떨어진다. 감나무에서 감을 기대하는 단계도 지났고 어쩌다 감이 많이 열려도 따지 않는다. 늙고 약한 감나무는 잘 부러져서 올라가면 크게 위험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시골 마을로 드라이브를 갔더니 서리를 맞은 홍시가 나뭇가지에 달린 채 그대로 얼어 있었다. 그 마을 감나무들이 대부분 그랬다. 딸 사람도 없고 늙어서 이제 쓸모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감나무에서 마음을 뗄 수 없는 건 왕관 같은 감꽃이 떨어지고, 감이파리 뒹구는 소리를 내주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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