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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 들리는 잔뜩 흐린 금요일, 오전 9시를 지나자 장생포 고래특구 고래박물관 주변에는 30여대의 관광버스가 겹겹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체험학습, 현장학습 차 온 초·중·고등 학생들, 여러 개의 손잡이가 달린 줄을 꼭 잡고 선생님을 따르는 유치원 아이들, 허리춤에 손을 얹고 천천히 걷는 노인분들로 가득 매운 광장은 활기롭고 분주했다.

 고래박물관 2층 입구안에는 해설사의 열변을 앉아서 듣는 한무리의 관람객들이 마치 대중집회의 모습과 같았다. 큰 소리로 유치원 아이들을 이해시키려는 인솔 선생님들은 마치 해설사들과 같았다. 3D 영상물에 환호하는 아이들, 그리고 다음 순번을 기다리며 복도에 조용히 늘어 앉은 아이들. 어린이 학습 코너의 아이들은 해보기에 신이 났다. 그 사이에 무리를 잃은 어른들은 같이 온 이들을 찾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건립한지 10년이 지난 박물관의 모습, 고래테마의 인기가 아닐까 한다.

 가장 인기 높은 고래생태체험관은 개·보수차 휴관 중이었고, 고래바다여행선은 일기불순으로 휴항 중이었다. 포경선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광장의 조형물과 바닥의 그림을 관찰하고,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한참 지나 점심때가 되어 몇 대의 관광버스가 고래문화마을로 움직이고 있었다. 따라 올라가 보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고래조각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대왕고래 뱃속에는 어린이들이 가득하였다. 지나가는 관광객들 중 웃지 않은 이가 하나도 없었다. 장생포 옛마을에는 교복을 빌려입고 활보하는 남녀학생들, 자세히 보니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는 힘든 일상으로부터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교양과 지식의 향상은 물론 휴식과 재충전의 장소이다.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은 지구역사상 최대동물에 대한 신기함의 체험과 생태계 보존에 대한 교육적 공간이다. 고래바다여행선은 바다를 느끼며 울산연안과 해양생태와 고래를 관찰하는 승선여행이다. 산책하며 체험하고 먹거리도 즐기면서 보다 긴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은 고래문화마을인 것 같다.

 고래문화특구는 포경항 장생포의 해방 이후 포경 전성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듯하다. 장생포가 포경항이 된 것은 17세기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과 러시아 등 서구 열강들의 포경 팽창의 결과에 기인하고 있다. 러시아가 동해에서 잡은 고래의 효율적 처리를 위해 1899년 장생포에 포경근거지를 설치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석유로부터 우리 일상의 수많은 가공품들이 공급되고 있듯이 과거 수세기 동안은 고래기름이 석유를 대신했다. 전기가 사용되기 전인 제1차 산업혁명기, 런던과 파리, 뉴욕의 가정과 거리의 등불을 밝히고 무도회장에 모인 귀족들의 의상, 모자, 구두와 코르셋까지 고래의 부산물로 만들어 졌다.

 서구열강들이 고래잡이로 국부를 축적하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어 우리바다에 까지 어장을 확대하면서 장생포가 포경근거지로 임차되던 그 시기는 포경사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우리의 한 역사이다. 당시 우리의 역사는 해양과 바다자원의 이용에 대한 도전을 찾아 볼 수 없었던 반면, 이양선으로 일컬어진 서구 열강의 수많은 포경선들이 우리의 연안에 출몰하였고, 독도의 모습과 위치를 항해일지에 적고, 식음료의 조달을 위해 상륙한 선원과 어촌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조우도 이루어졌다.

 고래문화특구는 우리바다에서 고래잡이를 한 서구의 포경사 등 소재의 확장이 필요하다. 장생포 옛마을처럼, 미국의 포경항 뉴베드퍼드나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델란드, 러시아의 옛마을도 약식으로 조성하여 관광객들이 당시의 생활양식이나 의복 등을 체험할 수 있게 하면 전주한옥마을처럼 관광객들이 참여하고 체험하며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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