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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흔
                                                                          김경주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물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을 뒤집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졌다기 보단 어쩐지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 김경주 시인 -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꽃 피는 공중전화' 등단.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 류윤모 시인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의 신예의 등장에 시단은 벼락같은 축복이 내려졌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시는 재독 삼독해 읽지 않고는 한눈에 쉽사리 해독해 내기란 요령부득의 난해한 시. 시인은 울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층 속에 묻힌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스레 벗겨내는 화석 발굴의 현장에 따라나선 시인은 동질감을 느낀다. 주저흔이란 목매달아 죽으려다가 살아남은 사람의 죽음을 주저했던 흔적. 이 주저흔이 동굴 속 몇 세기 전 지층에서 발견된다.
 생몰 연대의 주저흔을 보며 자신이 흐느끼는 것만 같은 심리적 전이를 일으킨다. 화자의 기억 속 불변의 사건의 기억이 지층 내부에서 자신의 내부로 수평 이동한다. 동굴 속에서 흐느끼는 느낌을 받았다, 는 것은 주저흔을 남긴 짐승이 곧 자신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바람과 빛 덩이들이 곤죽을 이룬 외부가 곧 자신의 내부이며 내부가 곧 외부라는 기억의 확장성. 복원하려는 기억이 화자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바람은 곧 뒤섞인 숨결? 숨결의 계보를 뜻하는 것은 아닐지. 자신의 내부와 외부, 울음소리와 바람소리, 이미지와 이미지가 교차된다. 인간의 울음은 자신의 내부의 일이기도 하지만 흔히 접하는 바깥의 일이기도 하다. 시인은 수 백 년 전 화석에서 아스라한 어머니의 울음을 듣는다.
 자신을 출산할 때 어머니가 어금니를 깨물고 참아내며 울었을 고통과 고고의 첫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에 태어났을 배꼽으로 연결된 불가분의 운명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고로 고통스럽고 신산한 삶을 살다갔을 어머니도 자신처럼 운명적으로 닮은꼴의, 죽음을 주저했을 흔적. 주저흔을 남겼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시인은 끝을 맺는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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