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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볼 소설 속 주인공은 일본 문학사상 '소설의 신'이라 불리는 작가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1883~1971)의 장편소설 『암야행로(暗夜行路)』의 주인공이다. 일본문학을 공부하다보면 꼭 읽어야 할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암야행로』도 그런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시가 나오야는 '소설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 사물에 대한 정확한 표현, 뛰어난 심리묘사 등의 평가는 어딜 가나 따라 다닌다.

 내가 이 『암야행로』를 읽은 것은 본격적으로 일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일본유학시절이었다. 스토리가 막장 드라마 같이 황당할 수도 있지만, 묘하게 인과응보와 같은 업(業)의 끈이 느껴져서 오랫동안 기억이 남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면서 느낀 것은 일본 근대문학의 특징 중 하나인 사소설(私小說)의 장점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느 쪽인가 하면 100%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면서 리얼리티가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사소설이라는 것은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그린 소설을 이른다. 그런데 일본 사소설의 발달은 너무 지나쳐서 자기고백적 소설이라든지 자기폭로적 소설, 나아가 자기파멸적 소설로 치닿고 말았다.

 지금도 일본현대소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소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자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어가면서 어느새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암야행로』는 작가 시가 나오야의 자전적인 소설은 아니다. 픽션이지만 사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겐사쿠는 아버지가 출장 중에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자식인데 그것을 모르고 자랐다. 어머니가 일찍 죽고 켄사쿠는 다른 형제들과 떨어져서 혼자 할아버지와 지내는 데, 당시 할아버지에게는 오에이라는 젊은 첩이 있어 함께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오에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겐사쿠한테 생활비를 보내지만, 늘 냉담한 편이었다. 그러던 중에 겐사쿠는 오에이에게 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해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형제들 중에 가장 친한 형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 편지에는 놀랍게도 겐사쿠의 출생의 비밀이 담겨져 있었다. 겐사쿠는 아버지가 외국으로 출장을 간 사이에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던 것이다.


 켄사쿠는 그 충격으로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가 도쿄를 떠나 교토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교토에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게다가 나오코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나오코와의 결혼은 겐사쿠에게 있어서 일종의 구원과도 같았다. 겐사쿠는 결혼과 동시에 방탕한 생활을 끝내고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평온함도 잠시, 겐사쿠가 조선으로 출장을 간 사이에 아내 나오코가 사촌형에 의해 강간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된 겐사쿠는 나오코를 용서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겹쳐지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다가 1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집을 떠나 산 속의 절에서 지내게 된다. 겐사쿠는 산 속에 있으면서도 애증의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면서, 자연 속에서의 생활과 주변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서서히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어릴 때 늘 냉정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면서 나오코를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작가 시가 나오야는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해서 17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추고를 거듭하여 1937년에 장편소설로 완성시켰다고 한다. 작가가 애정을 갖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만큼, 『암야행로』를 읽다보면, 내가 받고 있는 모든 상황과 현상들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원인에 의해 그 결과로서 나타난다고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선 좋은 인(因)을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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