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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도전을 꿈꾸며
윤경화 수필가
2016년 11월 10일 (목) 20:50:36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나에게 공중부양이나 축지법이 필요한 철이 있다. 황갈색잎벌레가 초례를 치르는 초여름이다. 해질녘이면 정원과 산책로의 녹색 잔디에 갈색의 기운이 돌 만큼 잎벌레들로 빈틈이 없어서 두 발을 건사하기가 여간 곤란하지 않다. 스쳐 지나면 고요에 가까울 정도로 움직임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활을 건 쟁탈전이 있고, 뜨거운 정사가 있다. 어떤 녀석은 천하를 잃은 듯 기운이 빠져 기어 다니기도 한다.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겨우 몸을 추스르는 녀석도 있다. 모두 경쟁 과정에서 다양한 유형의 충돌을 겪은 뒤의 모습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경쟁 속을 헤쳐 나가는 일이며 필연적으로 만나는 충돌을 잘 극복하는 일일 것이다. 여러 광경 중에 유난히 죽기 살기로 싸우는 녀석들을 볼 수 있다. 짝짓기 철에 암컷이 내뿜은 성페르몬 향을 맡고 뒤늦게 날아온 수컷이 이미 신방을 차린 녀석에게 도전하는 모습이다. 먼저 신부를 맞은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훼방꾼의 끈질긴 방해에도 기어이 목적 달성을 한다.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진땀이 날 만한 배짱과 집념, 뚝심과 끈기는 콩알만 한 녀석의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거듭 감탄을 하다 문득 팔순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나의 이런 모습을 봤다면 "곱게 늙어라"라며 필시 한 말씀 하셨을 것 같아 딴청을 부려본다. '녀석들, 내가 러브 모텔 주인인 줄 아나? 방값이나 많이 내라'며 구시렁거린다. 언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저들처럼 열정을 쏟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흐림과 맑음의 어중간한 날씨가 하루 종일 반복되다 저녁이 오는 것을 싫어한다. 일정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듯 뒤가 개운하지 않기 때문이다. 맑음과 흐림, 비와 눈이 분명한 날씨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내 삶을 들여다보면 양쪽에다 다리를 걸치고 있는 형국처럼 미적지근하다.
 나는 지금 연령적으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러나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한 채 현실과 꿈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영업을 하고 있어 퇴직 시기는 본인의 의지와 건강에 달려 있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찾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머리로는 현실적인 계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마음에서는 또 다른 선택인 꿈이 당신의 나머지 인생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속삭인다. 늘 동경하던 세계의 문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에 형체 없는 시간에다 선을 긋기 시작한 지가 벌써 여러 해 된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 미련이 남아 있지만 내가 방문한 적 없는 세계의 내밀한 속사정을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쥐꼬리만큼 남은 시간을 두고 아직도 이러고 있는 나의 형편없는 용기와 도전 의식에 스스로 실망도 한다.
 그렇다고 현재의 내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늘 마음속에 그리던 세상으로 걸어가 소망을 실현해 보고 싶은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도 가장 큰 모험은 꿈꿔오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본인이 소망하던 대로 인생을 살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순을 넘긴 나이는 대단한 꿈이 아니어도 도전 그 자체가 모험이다. 시간과 건강 외에 많은 제약과 난관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목표 지점은 멈추는 곳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그 여정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외감은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엔 나의 열정이 화롯불 같겠지만 나 자신은 용광로처럼 느끼며 날마다 신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황갈색잎벌레의 목숨을 건 누대의 존재 양식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겠지만, 그 열정만은 미물과 사람의 것을 굳이 구별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젊은 시절에는 생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방랑기 많은 아버지와 함께 지구촌을 연구실 삼아 여행하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아버지는 예순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제 아버지의 생애보다 많은 나이가 되어 남편과 더불어 식물과 곤충을 공부하려 준비 중이다. 현실적으로 당장 많은 문제가 따르지만 높은 산을 오를 때 땀이 나야 제 맛이듯 내가 경험할 모험 또한 난관의 의미가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문장 속에 수많은 식물과 곤충이 사람과 대등절을 이루며 아름다운 '인드라망'이 되는 꿈은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처럼 가슴을 부풀게 한다. 이제 두 세계의 미묘한 삶의 방식을 한 세계로 단순화하려 한다. 비록 늦은 시작이지만 분산된 힘을 한 곳으로 모아 집중해보고 싶다.
 양쪽에서 이익을 보려고 두 편에 다 관계를 가지는 것을 '양다리 걸친다'고 한다. 우리의 불안전한 생존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인간의 '전략적 선택'의 여운이 느껴지는 말이지만 내 삶의 방식 속에도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한쪽 세계를 거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기를 소원한다.  
 작고 소박한 바람이라 해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늦은 출발지만 그 소망을 위하여 남은 열정을 다할 수 있다면 큰 복이라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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