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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사과가 있었고 세 번의 시민저항운동이 있었다. 농락 당한 지지자들은 두 번의 사과와 세 번의 거리집회를 넋 놓고 바라봤다. 대선불복부터 세월호에 사드까지 어차피 박근혜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쪽은 허탈할 일도 없다. 그 봐라, 닭대가리 정부, 유신의 적폐, 부패의 종균이 어딜 가겠냐. 비아냥거림이 조롱으로 이어지고 대놓고 하야를 노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10년 기다리던 좌파정권의 꿈이 손에 잡힐 듯하니 매일 밤마다 마음이 급하기만 하다. 하야 말고 다른 단어는 없을까. 더 세고 더 급박할 수 있는 단어를 뒤지느라 밤잠이 아까울지도 모를 일이다.

 피드백이 즉각적인 상황은 재미있다. 공부든 게임이든 일상생활이든 반응을 바로 바로 해준다면 주도권을 가진 쪽은 창의적 인간이 된다. 지금이 딱 그렇다. 거국개각, 책임총리, 2선후퇴. 내놓는 것마다 낼름 받아주니 이번에는 외치도 안된다고 한다. 국격이 떨어지니 아예 물러나라며 팔짱을 낀다.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이제 맘대로 움직여주니 어깨가 들썩거린다. 신이 났다. 야당 이야기다. 처음부터 물러나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담백하다. 조건을 걸고 상황을 따지는 건 정치의 오래된 불치병이다.

 영희와 놀던 안철수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며 당신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닙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카메라를 노려본다. 김대중의 책사, 좌파의 알파고격인 박지원은 밀었다 당겼다를 조절하며 연일 주가를 올리는 중이다. 문재인의 꼭두각시들은 좌충우돌이다. 이제 몇밤만 지나면 우리의 세상의 온다며 밤마다 건배를 외치고 싶지만 표정관리하랴 투쟁지침 받아 적으랴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보는 눈이 더 많아 걱정이다. 

 정말 딱한 건 새누리당이다. 북한의 준동을 이야기 하고 경제의 파탄을 걱정하지만 앵무새 입처럼 영혼이 없다. 이미 양치기 소년은 동네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외양간에 숨어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수를 위해 이정현 카드는 버릴 수 없겠지만 이미 읽힌 수는 폐기처분이 답이다. 비박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온 김무성류들이야 당 해체 선언까지 하고 있지만 비박이든 진박이든 수박이든 박을 꼬리에 붙이고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정치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최순실 사태의 본질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녀를 믿고 그녀에게 권력을 쥐어준 중도 보수층 민초들은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다. 그 우울증상의 핵심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그리고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서 선서를 할 때, 한결같이 외친 단어는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였다. 비정상의 정상화와 문화융성, 창조경제까지 잘못된 과거는 비정상의 정상화와 법과 원칙으로 지우고 한반도의 미래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으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그 믿음의 심장이 갑질에 이력이 난채 부패의 악취를 향수로 처바른 일개 무명인으로 병들었다는 사실이다. 그 병든 인사를 대통령은 오래된 인연이라고 했다. 쉽게 풀면 친구다. 4살 어린 친구지만 어려운 시절 함께한 인연의 끈이 40년을 이어왔으니 피보다 진한 사이로 연결된 셈이다.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족사에 고립된 청년기를 보낸 대통령에게 최순실은 뜨거운 존재일 수 있다. 그녀를 믿고 그녀에게 의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선을 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몰랐던 대통령의 사생활은 영원히 몰라도 그만이다. 하지만 몰라도 되는 사생활을 드러나게 한 건 대통령이다. 친동생들을 내치고 사이비 교주같은 가족들과 인연을 맺어 고립을 자초했냐고 이야기 하고 싶겠지만 그것도 대통령의 청년시절을 잘 모르기에 함부로 이야기 할 대목은 아니다. 다만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인연을 맺었든 대통령이 되면서 외친 원칙과 신뢰, 주변정리의 이미지는 대통령 스스로가 위장한 분장술이 되고 말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중도 보수층이 허탈감이라는 씽크홀에  빠졌다. 미르가 용띠 대통령을 상징하고 블루 K가 청와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비리의 온상이라는 이야기가 떠돌 때만 해도 설마했던 일들이 굿판과 세월호 제물설에 이어 최태민 자식 출산설까지 온통 루머로 도배한 세상이 됐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믿지 않았던 콘크리트 지지자들 조차 귀를 의심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믿음을 깬 것은 루머가 아니라 최순실 따위에게 혼을 의탁한 대통령이다. 우매한 수구세력들은 여전히 촛불의 배후를 이야기 하지만 배후는 바로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의 허탈감이다. 그 상실감이 불을 켜고 대통령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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