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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하인츠 야니쉬 / 그림 알료샤 블라우 / 옮김 박민수 / 웅진주니어

'현실'에 저항하고 판타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 있는 헌사이다. 그걸 보는 순간 그림책을 읽으면서 내가 한 행동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에 기뻤다. 우와, 우와 두 눈을 반짝이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아이처럼 환호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당신의 과거를 들려주는데 말도 안 되는 엉터리였다. 그런데도 틀린 말이 아니었고 아주 유쾌했다. 할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이야기였다. 판타지의 힘이었다.
 할아버지는 유아시절 서랍에 물을 가득 채웠으나 물이 바다로 가고 싶어 서랍장을 빠져 나갔다고, 초등학교 시절엔 벌꿀 케이크를 먹은 뒤 일주일 동안 꿀벌에 쫓겨 다녔는데 나중에는 화장실까지 그 꿀벌이 쫓아왔다고, 배꼽의 빨간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귓속에서 빨간 불꽃이 튀어나왔다고, 청소년기엔 축구공으로 비구름을 맞추어 소낙비가 내렸다고, 숲속을 거닐다 날개 한 쌍을 발견하여 그 날개로 숲속을 날아다녔다고, 청년기에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강 위에 다리 하나를 뚝딱 만들어 건너가 지금의 할머니와 데이트 하였다고, 성인이 되어 전쟁에 참여했다가 갑자기 낙하산을 타고 고향집 흔들의자에 앉았다고 그리고 동굴에서 만난 신기한 동물이 편안히 살도록 그 일을 비밀로 한 일, 마침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스물일곱 날을 밤낮으로 잠만 자면서 꿈속에서 세계 일주를 한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붉은 뺨'은 2006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라가차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 조희양 아동문학가
 이미 할아버지는 돌아가신지 일 년이 지났지만,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오가며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지난날을 이야기 할 때마다 붉어지는 할아버지의 뺨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손자의 뺨도 붉어지는 풍경이 따듯하다. 추운 날 할아버지의 붉은 뺨은 만지고 싶은 작은 난로다. 손자의 손바닥을 데워주는 할아버지의 붉은 뺨 같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진다.  조희양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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