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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끝자락이 보이는 광주비엔날레를 찾았다. 이 끝자락을 잡지 못하면 올해는 놓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에 부랴부랴 갔지만,'기대에 어긋나지 않게'역시 그냥 그랬다.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명제를 통해 예술이 미래에 할 수 있는 역할을 탐구하려는, 기후에 관계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경고 혹은 예측을, 느낌이 다였다. 그들이 세운 예술의 근본적 역할에 대한 고민은 물론 예술의미와 메시지도 내 능력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예술과 인간,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전제로 전시를 꾸미는 것이라면 작품에는 인간과 사회 사이에서 소통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야 한다. 작은 행위 속에서라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나는데, 예술목적과 의도를 배제하고 주관적 의미기호만을 생산하는 예술가와 상식적인 의미기호로 풍부하게 구성된 전언을 담는 것이 예술목적이라고 여기는 감상자들 사이에서 단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예술에 대한 필요와 불용이라는 양극의 주장이 맞부딪치기 때문에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감상자 쪽에서는 광주비엔날레는 불통이었고, 가운데 지점에 서있는 전문가는 예술목적과 역할에 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엔날레에 참가한 작가들이야 당연히 즐겼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기호들에 둘러싸였으니까 말이다.

 미술상식. 비엔날레(Biennale)는 2년마다 하는 행사라는 이태리 말이다.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시작한지 120년이나 되는 베니스비엔날레가 모두 2년마다 열린다. 낯설고 실험적인 현대미술로 기획되는 전시로 유명무명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국가관이 설치된 베니스비엔날레는 국가대항전 성격을 띠면서 문화올림픽으로 불리기도 한다. 트리엔날레(Triennale)는 삼년마다 열리는 행사로 밀라노트리엔날레가 유명하다.

 더 긴 주기로 열리는 미술행사는 5년마다 열리는 카셀도큐멘타(Documenta)로 국제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대미술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도큐멘타라는 이름이 붙었다.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10년마다 열린다. 작은 교육도시인 뮌스터에 10년마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것이다. 1975년에 헨리 무어(Hennry Moore)의 작품을 설치하는 것에 반대한 시민에게 대안으로 시작한 행사로, 이제는 긴 호흡을 가진 예술문화행사로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내년 2017년은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열려 유럽 전체가 들썩일 것이다. 놓치면 또 10년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울산도 제대로 된 국제적인 미술행사 하나정도는 있어야 한다. 문화교류는 흔적이 남고, 그게 쌓이면 현상이 되고, 시류가 된다. 시간이 문화를 만들고 결국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은 그렇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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