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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망하고 이씨조선이 개국할 때 였다. 고려조의 선비 72명이 섬기던 나라가 아닌 조정에 나아가 어찌 녹을 받아 먹겠느냐 면서 모두 관복을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만수산 두문동으로 들어가 세상과 일체의 연락을 끊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살게 되었다. 이성계의 미움을 받아오던 중 참다못한 이태조가 명을 내리자 군사들이 산을 에워싸고 산불을 질러 모두 몰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은 두문동 선비의 반란으로 널리 알려지고 두문불출이란 말도 여기서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만고 충의 라면서 충의의 표상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여기에 못지 않은 충의정신을 가르치는 울산 사람이 있다. 박추 라는 사람이 행한 실화가 그것이다.

박추는 울산고을을 처음 있게 한 계변성 성주이자 일명 신학성 장군이라 불리는 흥려백 박윤웅의 후손으로 아호를 사은이라 불렀고 울산 중앙농협 전 박인혁 조합장과 아우인 인우 형제의 가계상 선조가 된다. 고려말 문과에 급제한 그는 지금의 시도지사격인 충청감사(관찰사)로 부임해 있었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바뀐 소식을 접하자 급히 개경으로 달려가 뜻이 맞는 중신들과 대성통곡하며 울분을 토하고는 저마다 통한의 시를 쓰게 되는데 그 시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두견새가 촉나라에 돌아가고 싶으나 돌아가지 못해 봄이 세 번이나 맞도록 울고 또 울면서 피를 토했다 하듯이 이 몸 역시 울산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심사가 만리 같구나 가장 마음이 아프고 쓰라린 곳은 선죽교를 지날 때 로다. 또 이런 시도 남겼다. 미역바위에 올라 미역을 캐니 마음은 마치 뜬구름과 같으니 그 누구의 잘못이라 하리요

미역바위는 태조 왕건이 조상인 박윤웅에게 하사한 북구 강동의 구유리의 미역바위를 말하며 지금도 질좋은  미역을 캐고 있다. 이 시에 담긴 깊은 뜻은 고려조의 훌륭한 선비인 야은 길재 등이 이성계의 휘하에 들기를 기다리고 있으나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비치는 사은공의 속심이 담겨 있다. 서릿발 같은 지조와 절개를 가졌던 박추는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범서 서사에 움막을 짓고 밖으로는 사람들이 들지 못하도록 가시로 막아 버렸다. 앉거나 누울 때에는 머리를 절대로 북쪽방향으로 두지 않았다. 쌀은 땀 흘려 생산한 백성들이 먹어야 한다고 콩죽으로 연명하다 세상을 떠났다. 온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들끓고 있지만 이는 이 고장의 인물 박추의 정신을 이어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우외환이 닥쳐도 나설 인물이 없다고 노정객 김종필 전 총리가 한탄했다고 한다. 한탄 한들 지금 나설 사람이 있다 한들 나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없을 땐 최순실이 인사를 단행 했다는 이 황당한 현실을 보고 어떻게 말할 것인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 버린 현실을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하고 울어버린 자괴감도 실망스러움도 사실은 4.13 총선때 공천이란 올가미를 쥐고 친박이 아닌 사람들을 뽑아버린 오만방자함을 내 보이던 그때 왜 내이름을 두고 편 가르기를 하느냐! 내뜻은 진실로 진실로 그런 것이 아니다! 하고 한번은 고함을 지르고 오히려 그렇게 오만 방자한 행동을 보인 자들을 드러냈어야 했었다.

일제 강점기 무단 정치로 악명을 높이던 데라우찌 총독 아래에서 긴 칼 차고 으스대는 일본 헌병처럼 휘젖던 그가 당 대표까지 죽여 버려! 할 때도 누나 답게 침묵으로 일관한 대통령이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최태민을 친국했던 즈음에 청와대의 이후락 비서실장과 박종규 등 측근 참모들과 밤을 새우며 통음하고는 영부인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서 또 울산 강동 출신의 교육 철학자이자 대구 사범 은사였던 박관수 선생을 모처에서 이후락 실장을 대동 하고 가서 선생님! 선생님! 하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부짖던 사실을….

또 그리고 나서 이후락 실장이 고향 친구 정택락을 서울로 불러 각하가 상심하시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이니 자네가 서울에  좀 있어 달라면서 술친구로 삼았던 사실을 ….

어쩐 일로 울산사람을 거명 하며 이 글을 쓰고 있자니 그런 아버지의 깊은 속심은 물보다 진한 피들과 오붓하게 의좋게 살면서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 다오! 하는 부모의 간절한 소원을 느낄 수 있거늘 어찌하여 그 최면술의 망령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알려진 최태민의 수단을 이어받은 최순실의 노략질에 파묻쳐 살아왔는지? 분하고 안타깝고 원통 하기만하다.

사은공이 피를 토한 두견새를 인용 했듯이 하늘에 계신 부모님은 아마 백만 국민의 노함이 촛불로 비치는 것을 보고 그보다 더한 피울음을 쏟고 있을 것이다. 사은공 박추 어르신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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