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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모 방송 종편에서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융 심리학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의외의 말이라서 어떻게 된 것인가 인터넷을 뒤져보고 미국의 융 심리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센터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융 센터 홈페이지에는 트럼프 관련 트럼프 현상이라는 제목의 글이 보였는데 강의는 이미 티켓 구입이 매진되어서 미안하다는 안내문과 함께 트럼프 현상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이 게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지면에서의 트럼프 현상에 대한 글들을 봤는데 그것은 주로 그림자와 관련되어 이야기 되고 있는 듯싶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이 이 강의는 트럼프 개인의 콤플렉스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오늘의 미국의 원형적 문화 콤플렉스를 분석하는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사실 공공적인 직무( elected office)에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고, 그는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을 취업시킬 것이며 사회를 개선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겠다고 하며 영주권이 없는 사람들을 추방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말하자면 담을 쌓아서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미국에서부터 제외시킬 것이라는 약속을 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하여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 하고 트럼프는 그들의 프라이드를 다시 찾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을 하였는데 이런 식으로 약속을 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독일의 히틀러였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 당시는 히틀러가 그렇게 어두운 그림자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트럼프는 여러 파격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나랏빚을 늘린 뒤 안 갚을 수도 있다고 하는 발언을 하며 파문이 일자 돈을 찍어 갚으면 된다고 말을 돌리면서 사실 그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자기들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것에서 트럼프가 적절히 그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사실 그림자를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거꾸로 아마도 트럼프가 융 심리학에 대하여 많은 체험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융 심리학은 그림자와 페르소나,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을 합일하여 전체에 이르고자 하는 심리학이지 트럼프처럼 그 갈등의 분열을 조장하여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 목적인 심리학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그냥 가식으로 이제껏 하던 대로 좋은 것이 좋다고 하는 식의 페르소나를 쓰고 하는 발언과는 그림자를 내어놓는 일은 다르다. 사실 오히려 가상이 아닌 실체가 있다는 그런 느낌을 갖게 할 수 있으며, 그 그림자를 잘 살려내어서 분화시킬 때에는 생생함의 생명력을 가져오는 우리 마음의 원형의 그림자인 것이다.
 문제는 사실 이런 트럼프 현상과 그림자 현상을 조장하는 것을 트럼프라는 대중 정치인에게 맡겨놓고 정작 자신의 속내는 안 내어놓고 가만히 몰래 선거장에 가서만 드러내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아마도 문제가 될 것이다. 샤이(shy)트럼프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온순할 것이라고 믿으면 잘못이다. 그들의 그림자는 작업이 안 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광폭한 행동으로 터져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샤이트럼프 현상 같은 그림자 현상들이 다수의 개인에게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그 의미가 이해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 개인들을 마치 자력처럼 함께 끌어들여 폭도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가 미국의 주류층과 상류층의 흑심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자 그것이 부끄러워서 트럼프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속으로는 돈도 찍어내고 빚도 안 갚는 행동을 하고 싶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그런 것에 관련이 없는 것처럼 구는 것은 아닌 것인지 잘 쳐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샤이(shy)트럼프 현상이라는 것이 외부에 트럼프 지지의사를 드러내지 않는 숨은 유권자를 뜻하는 것이며 이번 트럼프 당선의 주역은 이들인데 그들이 사실은 백인 남성들이 아니었고 성 차별 발언의 대상이었던 백인 여성들이었다니 이번 미국선거는 의외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이런 식이다. 그림자는 무의식의 이미지다.
 불행히도 인간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그가 상상하는 만큼 좋은 것이 아니며 누구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고 융은 말한다. 개인의 의식된 삶속에 실체화 되어있는 정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림자는 더욱 검고 더욱 진해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개인이 실체로 드러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샤이트럼프 현상도 그렇고 언제나 개인적 사회적 재앙은 우리 안에 무서운 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가 아니고 그것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그 성질과 실체를 용감하게 직면하는 것으로 그럴 때 인간은 세계를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는 것이라고 융은 말한다. 그 직면에서 피하는 부끄러움(shy trump)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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