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지기

                                                                                                                           김행숙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당신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다음 날도 당신을 부정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당신을 부정하기 위해 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 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다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나의 천직을 이유로 울지 않겠다, 라고 썼다. 일기를 쓸 때 나는 가끔 울었다.


●김행숙 시인 - 1999년 『현대문학』'뿔'등이 추천돼 등단. 2009년 제9회 '노작문학상'수상.

 

▲ 김 루 시인

진정 이 시대의 '문지기'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단호하게 말할 줄 아는 문지기가 있었다면 우리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지 않았을 텐데. 지켜보는 이들도 촛불을 든 시민들도 아프긴 매 마찬가지다. 김행숙의 '문지기'를 읽으면 천직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당신을 부정하기 위해 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내 직업이다. 이 부정문을 통해 왜 문지기는 끊임 없이 당신을 부정하기만 하려는 것일까? 우리는 역설적으로 되물어 볼 수 있다. 심리적으로 부정의 부정을 인용하면서 점차적으로 사랑할 본질에 가 닿고자 하는 속성을 통해 자신을 인정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가 숨어 있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詩는 개별적 감각으로 탄생되기도 하지만 개별적 감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끄러운 거리를 내다보면서 나는 이 시의 전언과 중량에 상관없이 아니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소신 있게 보좌하지 못한 넥타이들의 눈망울을 용서할 수 없는 밤. 문지기란 천직을 이유로 울지 않겠다, 라고 쓰며 가끔 눈물을 흘린다는 이 구절 속에 숨은 아픔이 나의 일인 냥 서럽기만 하다.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배권력층의 비리를 지켜봐야 하는 지금, 진정한 진리는 착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위협적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밤이다. 김루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