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논으로 가는 길
                                                                                           한신디아

경운기를 몰고 있는
농부의 거친 얼굴이 지나간다
 
가진 것 다 벗겨봐야
건포도같이 쪼그라든
맨손뿐인 것을
 
자식 뒷바라지에 농협 빚 갚느라
휘청휘청 짐칸에는
못자리 같은 걱정이 빼곡하다
 
돈 씨앗, 고생 씨알 싣고
무논으로 털털 거리며 간다
털- 털- 털
열 받은 경운기만 울어댄다


● 한신디아 시인 - 2009년 월간 '한국국보문학' 시 등단, 울산시문학상 작품상 (2013) 수상,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시인협회, 울산남구문학회 부회장, 한·영 번역시집'Sense of Aroma'.

■여행노트

▲ 류윤모 시인
이 시 전반에 깔린 분위기는 암울하다. 무논 같은 농부의 거친 얼굴, 갈퀴 같은 농부의 맨손이 포착되고 탈탈거리는 경운기 안에는 자식 사업 또는 학비 뒷바라지에 진 농협 빚 갚느라 짐칸엔 허리가 휘는 걱정들로 가득하다. 자고나면 성큼 자라있는 이자 걱정이 모판처럼 빼곡하다.
 심고 가꿔봐야 빌린 돈의 이자인 돈 씨앗 추렴에도 벅찬, 논두렁 밭두렁 허덕이며 일을 해서 해마다 추수를 해 봐야 고생뿐이건만 막살 놓고 놀 수도 없는 건 배운 도둑질이라곤 농사뿐.
 6·25 전쟁이 끝나고 혈육을 잃은 슬픔마저 억누르며 입술을 깨물고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논배미에 모를 심었다던 농심은 天心, 농부의 하늘인 논배미에 모를 심기위해 경운기를 몰고 ㅌㅌㅌ 지나가는, 어느 농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단조로운 정경이다. 주위에는 전원주택이나 모텔이 들어서고 사통팔달 고속도로가 뚫려도 삼빡하게 달라질 것이라곤 없는 농촌의 현실.
 공기 좋고 물 좋고 어쩌고 하지만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데는 걱정 근심이 베이스로 깔려 있다.
 겉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풍광에 취하기보다 시인의 웅숭깊은 눈은 핍진한 농촌 현실을 마음의 눈으로 리얼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농부의 거친 얼굴, 쭈그러진 빈손, 짐칸에는 못자리 같은 걱정, 돈 씨앗, 고생 씨앗 등 비유와 은유가 적재적소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직조돼 있다.
 과거 농촌의 현실이 가난과 굶주림이라면 개방화와 산업화의 그늘이기도 한 요즘 농촌의 현실은 가가호호 빚더미다. 중언부언 다 가지치기하고 뼈대만으로도 골격미가 살아있다. 화자나 시의 주인공이 값싼 울분을 토로하는 것이 아닌 심어봐야 빚더미뿐인 농업에 대한 자조를 돌려차기 하듯 경운기에다 빙의해 놓은 부분도 핵심 포인트.
 환금 가치 이전에 땅은 우리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피울음과 웃음이 밴 원형질의 유산. 흘러간 옛 노래 같은 농자천하지대본이니 농심은 천심이니들 하지만 그 천심도 이젠 근골격계 질환으로 잠 못드는, 거개가 늙고 병든 노인들. 촌로들의 갈라지고 터진 손바닥 같은 논배미들, 낡은 흑백사진 같은 기울고 쓰러져가는 독거의 우리 마음의 고향에 영영 미래는 없는 것인가.
 류윤모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