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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경험
심수향 시인
2016년 12월 01일 (목) 19:12:21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심수향 시인

달빛 흐린 상현달과 별이 몇 하늘에 떠 있고, 민박 뒤쪽 컴컴한 동산에서 늦은 가을인데도 반딧불이들이 반짝거리며 날아올 것 같은 축축한 밤이다. 마당 한 쪽에서 시작되는 바다는 비린내도 너울도 없이 타작마당처럼 펼쳐져있다.
 몇 몇 낚시꾼들이 마당에서 웅성웅성하더니 사라지고 어색해하는 여행객들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보고 있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다. 그때 슬금슬금 조용조용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일행도 움직이는 사람들 쪽으로 따라갔다. 가까이 다가선 우리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활어 수족관 앞바닥에 비린내가 물큰 돌고, 그 속에 생선 한 마리가 길게 누워 있었다. 그것은 푸르스름하고 무지갯빛이 감도는 방어였다. 나는 그렇게 큰 방어를 본 적이 없다.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해 보건데 족히 1미터는 넘어 보였다.
 구경꾼 중 한 남자가 이 정도면 대방어 중의 대방어라고 비밀을 옮기듯 목소리를 낮추어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방어를 잡았다는 사내는 민박에 든 사람들에게 방어를 선물로 주고 사라져버렸다. 얼결에 받아든 초로의 한 사내가 호기롭게 방어를 회로 떠서 모두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팔을 걷어 붙였다.
 그런데, 회 한 점으로 나누기엔 그 방어는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위엄이 서려 있었다. 마치 적진에 끌려온 장수처럼 당당해 보였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한 번의 탄성 후에는 이상하게 모두 침묵하였다.
 낚싯대에 끌려왔다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나 방어는 너무나 깨끗했다. 너덜너덜한 뼈만 남은 노인과 바다의 청새치가 아니었다. 힘겨운 사투 끝 노인의 배 고물에 끌려 온 처절한 막판과는 너무도 판이하였다.
 몇몇은 초짜 사내의 방어 해체 작업을 구경하였고, 우리와 몇몇은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와 방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간간 터지는 탄성소리가 식당까지 들려왔다. 족히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한 여자가 커다란 접시에 동백꽃잎 같이 썰린 방어회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싱싱한 비린내와 함께 초로의 남자가 입성하듯 식당으로 들어왔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손뼉으로 그를 맞이하였고 그는 고개 숙여 땀을 닦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무지개가 도는 방어 몇 점이 우리 식탁으로 건너왔다. 머뭇거리는 것도 잠시 두툼하게 썰린 회 한 점을 씹었다. 맛보다는 묘한 감촉이 입안에서 겉돌았다. 그리고 엷은 두려움 같은 것도 뒤이어 밀려왔다. 큰 고기를 이무기 정도로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DNA때문이었을까.
 나는 밖을 나와 비린내가 남아도는 수족관 앞 쓰레기통에 거꾸로 처박혀 있는 대방어 뼈를 발견했다. 붉은 빛이 도는 커다란 뼈대에 아직도 붙어 있는 살점들이 푸들푸들 떨리는 것 같았다. 순간 좀 전 삼킨 방어가 울컥 밀려올라왔다. 발길을 돌렸다.
 식당 안에는 방어를 낚았다는 사내 둘이 인사를 받고 있었다.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방어를 잡아 올렸을 때 어떤 느낌이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선망 속에 서 있던 사내 둘이 동시에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쏘아보았다. 그러다 한 사내가 찌를 던지듯 말을 던졌다. 그 순간엔 느낌도 생각도 없다고. 놓치지 않겠다는 본능만 살아 있다 하자 옆의 사내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내가 원한 답을 기대한 것은 어리석음이었다. 우문이었다. 그 우문이 닫혀 있던 내 안의 문을 삐꺽 열었을까. 무안하여 돌아서면서도 그들이 왜 골방 깊숙이 들어가서 침묵으로 두어 시간 보냈는지 짐작이 될 듯도 했다. 이때껏 불편하던 민박의 야릇하고 비릿한 공기가 싫지 않았고,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낚시라는 글자도 눈에 들어왔다.
 큰 생선 앞에서 죽음과의 타협도 생각해보고, 삶에 대한 서글픔에 젖기도 했던 조금 전까지 생각들이 가라앉았다. 그리곤 어디선가 괭이갈매기가 푸드덕 날아오를 것 같은 바다 쪽으로 허리를 돌려 바라보았다. 이때껏 내가 알던 바다와는 또 다른 바다가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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