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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리의 천국이다. 수천, 수만의 잠자리떼가 하늘을 뒤덮었다. 두 뺨에 두 팔에 아니 온몸에 휘감겨드는 잠자리떼. 그렇게나 많은 잠자리떼를 본 적이 없다. 연일 땡볕이 쨍쨍 내려쬐는 여름에 가을전령사 잠자리가 하늘을 가릴 만큼 날아들다니 신기한 일이다. 손을 내밀면 잠자리가 그대로 잡힐 것만 같다. 두 팔 벌려 끌어들이면 품안으로 가득 안겨들 것도 같다. 잠자리떼가 만든 터널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연방 탄성을 쏟아낸다. 며칠 전 선암수변공원 동녘 둑길의 모습이다.
 선암댐이 자연친화적인 수변공원으로 바뀐 뒤에 놀랄 만큼 달라졌다. 요즘 같은 무더위 속에서도 해거름이면 수변공원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집 가까이에 있으니 밤마실 가듯 쉽게 찾을 수가 있으니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 더욱이 밤이면 댐에서 피어오른 냉기 머금은 밤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와 무더위를 식혀줘 밤나들이를 즐기기에 그만한 곳도 없다.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에 황색불이 들어오면 산책길은 몽환의 길로 바뀐다. 그야말로 연인의 길이다. 그 길을 걷는 맛이란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야 알 수 없으리.


 선암수변공원. 작은 저수지였다. 일제강점기 때엔 농업용수원으로 쓰였다. 지난 1962년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비상공업용수를 모아두는 댐이 건설되고 주변지역에는 철조망이 쳐지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주민들은 출입통제에다 재산권침해까지 받았다. 삶터는 다른 곳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낡아만 갔다. 소외지역으로 내팽개쳐졌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무려 40년.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생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2천년대 들면서 시대정신이 바뀐다. 울산이 친환경생태도시로 태어난 것. 2004년 6월에 '에코폴리스 울산'이 선언되고 태화강에서부터 대대적으로 친자연적인 환경개선운동이 점화됐다. 선암댐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남구청과 수자원공사가 선암댐과 신선산을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수변공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드디어 2006년 7월 공사가 시작됐다. 이곳 주민 2만7천여세대 8만5천여명의 숙원이 해결된 것. 상징적인 흉물 철조망부터 사라졌다. 40년동안 사람과 자연을 경계지었던 철조망 울타리가 허물어진 것. 사방에 나뒹굴던 폐비닐 등 온갖 쓰레기가 말끔히 정비됐다. 아무렇게나 자라나 사람 키를 웃돌던 잡풀도 잘려나갔다. 주민들에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신선한 충격. 40년 묵은 체증이 확 뚫렸다.


 산과 물을 따라 4Km의 산책길이 만들어졌다. 산과 물에 맞닿아 있다. 산바람과 물바람이 동시에 불어댄다. 산내음과 물내음을 함께 맡을 수 있다. 환상적인 조합. 산책길은 황톳길과 나무다릿길로만 이어진다. 평평한 곳은 황톳길로 다듬었고, 산기슭 언덕배기에는 나무다릿길로 만든 것. 두 길을 걷는 맛이 사뭇 다르다. 이만저만 묘하지가 않다. 물과 숲이 어우러진 이런 산책길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터.


 새로운 산책길 솔마루길도 만들고 있다. 신선산 솔밭과 연계한 도심 녹지대 산책길. 신선산에서부터 울산대공원을 거쳐 삼호산과 남산, 태화들 대숲까지 이어지는 연장 24Km. 일부 구간만 완공됐지만 향후 도심 녹지축을 잇는 울산의 중심 산책길. 사철 푸른 솔바람과 솔내음을 마시며 걷는 발걸음에 활력이 넘치리라.


 물억새와 창포, 부들을 심어 습지원도 만들었다. 야생화를 심어 유화원을 만들고 명상의 공간도 꾸몄다. 물레방아와 인공폭포도 만들었다. 쉼터와 전망대도 만들었다. 지압보도와 장미터널도 만들었다. 눈에 확 띄는 게 있다. 장애인 탐방로. 시각장애인용 핸드레일과 유도블럭, 음성유도기를 설치했다. 산책길에 음향시설도 설치했다. 공연장도 만들었다. 주말이면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구비쳐 흐른다.


 철 따라 꽃도 바뀐다. 봄에는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힌다. 산책길 따라 벚꽃도 만발한다. 벚꽃터널을 이룬다. 그 뿐이랴. 신선산 보현사의 100년생 벚꽃은 장관이다. 황홀하다. 여름인 요즘은 온통 해바라기꽃으로 뒤덮였다. 때 이르게 피어난 코스모스꽃은 벌써 끝물이다. 1천여평 연지(蓮池)에는 백련과 홍련이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피어났다. 장엄을 이뤘다. 겨울엔 철새들로 북적인다. 청둥오리와 백로, 물닭 등이 어울려 겨울수채화를 그린다.


 신선산 정상에는 팔각형 신선정이 세워졌다. 정자에 오르면 발 아래 울산시가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장관이다. 북쪽 함월산이 가만가만 손에 잡힐 듯하다. 태화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뉜 시가지가 길게 뻗었다. 나날이 커가고 있는 울산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선암수변공원. 40년 불명예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완전 부활했다. 평일에도 5천여명이 찾는다. 주말이면 1만여명으로 불어난다. 전국에서도 벤치마킹 대상 첫손가락에 꼽힌다. 주민을 우선시하는 참다운 실천력에서부터 비롯됐다. 말이 아닌 진실한 실천이 힘이다. 자치행정이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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