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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시류에 혼탁해지는 의미를 경계해 사자성어를 선정하지 않기로 했던 교수신문에서 올해는 사자성어를 내놓았다. 초파일이면 불가의 큰스님이 대중사회를 향해 던지던 화두처럼 교수들도 시대의 흐름에 쉼표 하나쯤 찍는다. 올해의 쉼표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전국 교수 611명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로 32.4%가 군주민수를 선택했다고 한다. 군주민수는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할 수도 있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군주민수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교수는 "분노한 국민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재확인하며 박근혜 선장이 지휘하는 배를 흔들고 침몰시키려 한다"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선장을 바다로 던지면 될 일이지만 함께 침몰하려는 민심도 경계하고 있다면 너무 자의적 해석인지도 모를 일이다. 2위는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한다는 의미의 '역천자망(逆天者亡)'이, 3위에는 작은 이슬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노적성해(露積成海)'가 뽑혔다. 모두가 정치적 구호다. 한 해의 끝자락에는 한자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한 해를 대표하는 한자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는 올해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한자로 돈과 황금을 뜻하는 '金(금)'을 선정했다.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 선전한 선수들의 금메달,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지사의 정치자금 사적 유용,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금발과 부호 이미지 등으로 인해 '金'이 선정됐다고 협회는 설명했다.

대만은 '괴로울 고(苦)'를 선정했다. 올 자연재해가 잇따랐고, 양안관계가 악화하면서 관광 관련 산업이 크게 타격을 받았으며, 저소득 젊은층이 증대하는 것 등이 그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필자는 올해 칼럼에서 아홉 개의 사자성어를 차용했다. 우공이산, 이전투구, 지록위마, 유소작위, 편복지역, 구벌인세, 아전인수, 적반하장, 유아독존이다.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보인 기득권 싸움을 빗댄 상징어였다. 삼류무협으로 전개된 새누리당의 내분은 오늘의 탄핵사태를 부른 신호탄이었다.

당시 새누리의 수장이었던 김무성 대표는 공천권을 놓고 청와대와 친박의 견고한 수성전략에 홀로 맞서다 투항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법하다. "좌파 10년의 고리를 끊고 새누리로 통합한 보수복고 정무문의 통합신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왔다." "강호의 비결을 수련한 각계각공의 내공을 제대로 보지 못한 한구대공을 한칼에 베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무림의 질서와 민심의 이반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타협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함의된 비장함이 읽히지만 친박교본의 응용비수에 살점 몇자락 뜯겨나간 흉터는 지울 수가 없었다. 명분도 실리도 잃은 굴욕이었다.

연초에 사용한 지록위마는 환관정치를 경계한 충고였다. 달콤한 권력에 취해 부패하고 있는 시스템을 지적했지만 그 때부터 겨울까지 우병우의 권세는 오뉴월 땡볕이었다. 권력의 단맛을 본 자는 고기 맛을 본 중의 혀끝만큼 군침 조절능력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위치와 직분, 감당할 지분의 자존감을 가지지 못한 자가 권력의 도포에 몸을 감싸면 세상은 어지럽다. 지록위마다. 여름이 절정에 이를 때쯤 환관정치의 몰락을 예고하는 신호음이 새어나왔다. 구벌인세다. 개가 아니라 개를 쓰다듬는 주인의 문제를 지적했다. 유교사회에서 관공서 옆에만 살아도 완장을 찬 듯한 것이 우리네 고질병이었으니 백성의 원성이 그만큼 극에 달했다는 이야기였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권력욕을 풍자했지만 그 개의 주인은 개 줄까지 풀어버렸다. 산책길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주인이 개를 통제하지 못하면 개망신을 당한다. 각종 예방주사를 소홀히 하고 사람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부터 길바닥에 함부로 배설을 저지르는 일까지 평소에 단단히 잡아두지 않은 상태로 길거리에 나선 개는 주인의 뒷배를 믿고 날뛰기 마련이다. 뒷배가 뒷방으로 숨은 오늘에도 개의 본성은 고쳐지질 않는다. 부릅뜬 눈에서 세상을 향한 독기가 서려 있다. 천재를 알아주지 못한다는 독불장군의 절대우월감이다.

세상은 정체를 싫어한다. 언제나 변화하는 원리가 바탕에 깔렸지만 기득권을 잡은 이들은 그 원리를 잊는다. 아니 잊고 싶다. 변화보다는 어찌됐든 유지를 택한다. 요즘 떠도는 가짜보수다. 보수는 유지가 아니라 온고지신이다. 기득권을 통해 새로운 것은 흡수하는 힘이 보수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탄핵정국 이후 대통령 때리기의 앞잡이가 되고 무슨 독립투사의 밀정처럼 야단을 치는 장면들은 코미디다. 가짜보수들의 신당 꾸리기는 그래서 제몫 찾기와 제 살길 찾기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또다른 가짜보수들이 비대위를 꾸리는 일만큼 부질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편복지역을 머리띠로 두른채 "우리는 박쥐가 아니라 알바트로스랍니다"라고 외치며 찢어진 날개로 퍼덕거리는 모양 그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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