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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께만 해도 타결이 임박한 것으로 보도되던 현대차노사의 산별 중앙교섭이 7일 정갑득 금속노조위원장의 제동에 걸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날 정 위원장은 현대차노사가 어렵사리 의견접근을 이룬 중앙교섭안에 대해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협상에 차질을 빚게 됐다. 현대차 노사는 전날 회사에서 최종안이라 제시한 중앙교섭안을 놓고 수차례 정회를 거듭하는 진통 끝에 의견접근을 보고 금속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회에 상정, 추인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불법정치파업을 주도해 업무방해 혐의로 수배중인 정갑득 위원장이 이날 현대차의 교섭 현장에 참석해 현대차의 중앙교섭안은 대우차에서 내놓은 기준안에도 못 미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그동안의 협상이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정 위원장은 그리고 중앙쟁대위에 교섭안을 상정하기에 앞서 전면 재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비교대상이 되었던 대우차의 기준안이 현대차와 어떻게 다른지 공개되지는 않아 무엇이라 단정할 수 없다. 현대차노사 역시도 전날 의견접근을 보았다는 최종안에 대해 '보안유지'를 하고 있는 등 협상 자체를 실무선에서만 극비리에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노사 안팎에서 흘러나온 교섭안을 종합해보면 현대차는 기존의 원칙에 나름대로 충실하고 있는 반면 대우차는 금속노조측에서 '확신'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양보를 한 것으로 가닥이 잡힌다. 현대차와 대우차 모두 금속노조와의 중앙교섭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한 조건에서 현대차는 대우차와 달리 금속노조의 수용 가이드라인을 넘어섰다는 것이 정 위원장 판단으로 알려졌다. 정 위원장으로서는 지난해 완성차업체로부터 '올해 임단협부터 중앙교섭원칙 합의'를 이끌어내고도 '단서'에 결려 협상주도권을 빼앗기는 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포석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지부의 윤해모 지부장을 포함한 노조간부들의 입장은 다르다. 내년 협상을 위한 안전장치보다 4개월째 끌고 있는 임금협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것이 더 절박하다. 정치성이 짙은 중앙교섭의제를 관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합원들의 복지와 직결되는 올 임금협상을 위한 지부교섭에서 당초 인상목표에 얼마나 접근시키느냐가 핵심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앙교섭에만 매달리다 아직 지부교섭을 위한 본교섭은 거의 열어보지도 못했다. 이것이 조합원들로부터 노조가 외면당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와 사측을 오가며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 일반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노조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거침없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지침을 따르느라 특근거부와 네 차례의 부분파업을 했던 현대차 근로자들은 100만 원 이상의 급여손실을 입었다. 그러니 인터넷 등에서 "산별이 뭔데"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대차지부의 다급함과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조합원의 선택으로 구성된 노조집행부가 조합원들의 뜻을 언제까지 무시하고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지침과 명분에만 마냥 끌려갈 수 없는 노릇에서다. 현대차도 올 임금협상을 지루하게 끌면서 안팎의 비난 여론이 높아, 내년은 내년이고 올해라도 넘겨야 할 판이라 금속노조의 요구에 '손'을 들고 싶은 충동이 없지 않다. 대우차가 제시한 기준안까지만 양보하면 지금의 '욕 보따리'를 벗을 수 있다. 그러나 원칙에 한번 밀리게 되면 영원히 '늪'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현대차노사가 금속노조와의 대각선교섭에서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끌려가는 데는 이 같이 말 못할 고민이 있다. 특히 노조는 '금속노조만을 유일 교섭단체로 한다'는 규정을 수용한 마당에 급속노조의 지시사항을 거부할 수도 없어, 현재의 사태를 놓고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의 입장을 쫓자면 회사에서 최종적으로 제시한 중앙교섭안을 금속노조의 반대에도 불구 밀어붙여야 하지만 금속노조를 상급단체로 인정하고 있어, 전면 거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차지부는 최종 결정권을 조합원들의 뜻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을 저버리면 안 된다. 비록 금속노조와의 약속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조합원들의 권익신장에 목적이 있다. 조합원들의 이익과 배치된다면 금속노조를 더 이상 떠받들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울산의 양대 강성노조로,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의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현대중공업이 14년 연속 무분규기록을 수립했다. 그러면서 해마다 파업을 밥 먹듯이 벌이고 있는 현대차보다 임금이나 사원복지에서 전혀 손색이 없는 권익을 지켜내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어느 상급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순수 독립노조로 자리했다. 이제는 현대차지부도 무엇이 진정 조합원들과 지역민,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지를 두고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이것만이 "노조위원장도 못해 먹을 자리다"는 한탄을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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