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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는 그가 관찰한 자신의 한 체험을 이야기 했는데, 그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오로지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체험을 하였고 이렇게 마음에서 느낀 패배감으로 하여 그의 심리는 더 깊이 성숙해지게 되었다고 융 심리학자 중 한사람인 에딩거는 말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하고 그것을 이루고 다시 다른 욕망을 쫓고 그런 식으로 지속할 때에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을 갖게 되고 그가 원했던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보게 되면 달리말해 자신을 움직였던 그 욕망의 낙차인 대극 역동의 이면을 '의식'하게 된다면 충격으로 나가 떨어져 삶의 과정에서 추방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동의 배후를 알면 그것으로 희생되는 일이 없을 수 있지만 이제껏 자신을 움직였던 에너지와의 연결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라는 것인데, 에너지 낙차를 만들었던 그 양극을 넘어서는 지점과 만나는 것 같은 것으로 죽음이 뒤따르는 결혼으로 상징되기도 하는 사건인 것이다.

 이것은 에너지를 만드는 폭포의 한쪽을 동일시했을 때 떨어지는 추락 같은 것으로 대극이 합일되는 결합에 뒤따르는 대가 같은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극의 하나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뛰고 있나.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앞만 보면서 뛰는 것인데 그렇게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한번 뒤돌아서 본 적은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은 거꾸로 보면 보이게 되는 것일 수 있다. 법상 스님의 법문에 있는 것인데, 애착이라는 것, 무엇을 갖기를 원하는 욕망이라는 것은 이렇다. 커피, 술, 마약, 담배 같은 것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 이것을 끊으려고 하면 너무나도 힘이 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처럼 느끼곤 한다. 그런데 거기에 전혀 중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혼자서 좋아하면서 중독되고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 좀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사실 모든 중독자는 애초에 중독자가 아니었다. 갓난아이들은 커피든, 담배든, 술이든 중독되어 있지 않다. 어느 순간 내 스스로 거기에 얽매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스스로 어떤 한 가지 대상에 빠져서 그것 없이는 못살 것이라고 스스로를 그 대상에 구속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이 문제인 것이기 보다는 욕망에 자신이 빠져 있는 것을 명확히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상대에게 투영시켜서 그것을 기대했던 것인데 기대가 깨어지면 에너지는 그 대상에게서 떠나게 되고 이제껏 관계는 물거품이 되면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느 나이 드신 아내가 남편이 돌아가신 바로 직후에 그가 피우던 담배 갑이 뒹굴러 다니는 것을 보고 이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하소연 하던 것이 생각난다. 사실 우리의 의미가 담배 같은 외부 사물에만 머무는 것이라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담배 같은 것이 아닐 것이다. 굴러다니던 담배 말고 사랑하던 남편이 떠나간 뒤에 무엇이 남나.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에는 이제껏 자신의 영혼 같은 것을 그 임에게 맡겨두고 있었던 것인데 영혼을 맡아 담고 있었던 콘테이너가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나를 담고 있던 대상이 사라지면 그를 애도해야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죽은 사람에게 맡겼던 자신의 마음을 찾아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도 같이 묘지 속으로 들어 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애착을 가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꼭 진짜 죽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심리학적인 의미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가 실로 깊이 애착을 하여서 대상에 투여했던 것이 떨어져 나오는 것 자체가 죽음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극의 한쪽에 그렇게도 동일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원하던 것을 얻게 될 때에도 거꾸로 된 세계를 보게라도 되는 날에는 마찬가지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대상을 갖는 것이 대상을 갖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여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지 못하고 그렇게 원하던 우리의 결혼은 이루어졌지만 사랑은 사라지고, 우리의 삶이 다시 태어나며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이 되지 못할 때이다. 그냥 쳇바퀴 돌 듯 레테의 강을 건너서 이젠 사랑 같은 것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사랑에 따르게 되어 있는 사랑하는 자의 운명인 죽음 같은 것을 외면하면서 편안하게 사는 삶일 때는 대상을 갖게 된 것이 갖지 못한 것보다 더 불행한 삶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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