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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과 1월1일 하루차이로 묵은해와 새해로 나누는 달력을 보며 소망한다. 새해에는 행복만이 가득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말이다. 하지만, 2017년 1월하고도 10여 일이 지났지만 머릿속에서는 스스로 만든 희망보다는 밖에서 들려오는 어두운 소리 때문에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시절인 듯하다. 어렵고 힘든 이야기만 들려 무언가가 찜찜하게 우리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과 공포라는 한줄기 검은 구름이 여기저기를 휘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안과 공포는 대략 비슷한 말로 사용하지만 다르다. '미래에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을 안고 있다'거나 '지진과 핵에 대한 공포' 이런 일상적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은 대상이 막연하다.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꼭 집어서 무엇이 나를 떨게 하는지를 말할 수 없을 때 불안이라는 말을 쓴다. 공포는 확실한 대상, 예를 들면 어떤 현상이나 특정한 동물로부터 느끼는 무서움이다. 물론 의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도 더 면밀히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미 우리일상에서 불안과 공포를 은연중에 나누어 쓰고 있는 것이다.  


▲ 뭉크, 절규, 판지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 91×73cm, 1893, 오슬로 국립미술관.


 1892년 베를린 미술가협회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55점을 전시회에 냈던 뭉크는 시작 1주일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죽음과 성(sex)을 그렸다고 언론과 미술가들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찬반 투표까지 열었던 베를린 미술가협회는 둘로 나뉘어 베를린 분리파를 탄생시켰고 반대급부로 유럽에서 뭉크는 유명화가로 떠올랐다. 그는 1863년 노르웨이 뢰텐에서 태어났다. 5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14살 때 누나 역시 같은 병으로 사망한다. 후에 어린 여동생이 정신병 진단을, 유일한 남동생도 결혼식 후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 가족력을 가지고 있던 뭉크는 평생을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공학을 전공하기를 아버지는 원했으나 심약한 그는 중퇴하고 그림공부를 시작한다. 파리로 건너가 인상파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지만 자신의 정신세계를 그린 그림으로 베를린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거나 신화를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것이 미술이었지만, 뭉크는 자신의 마음속에 떠도는 것들을 표현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머릿속에 있는 환상을 그려낸 것이기에 뭉크는 또 한 번 미술의 지평을 확대시킨 것이다.

 1893년에 그린 뭉크의 '절규'는 인간이 느끼는 공포에 대한 기록이다. 스스로도 50가지가 넘는 변형작품을 제작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걸작이었다. 요즘처럼 우리사회 모두가 막연한 불안과 자신의 생활에 대한 공포를 심각하게 느낀 때는 없었을 것이다. 흔히 한치 앞도 전망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경제에도,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우리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공포도 꿋꿋이 대체했던 우리들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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