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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통으로 진료실을 찾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정신과의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설명해주어야 할 때가 있는데 신체적 고통을 치료하는 내과의사와는 역할이 다른 것으로 가끔 우리는 치료자라기보다는 코치에 가깝다는 말씀을 드린다.

 내과의사는 직접 병변을 내시경으로 위 점막의 궤양을 확인하고는 궤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선택하여 일정 기간 약을 복용하라는 지침을 주면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마음을 치료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접근될 수 없다. 마음은 내시경으로 들여다볼 수도 없고 마음의 병에 작용하는 약도 마음에 직접 작용한다기보다는 뇌를 통한 작용이다.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불안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 등은 의사가 안내를 할 수는 있어도 직접 접근하여 그 마음에 무엇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떻게 마음 자세를 가져보라고 한다든가 어떤 생활을 시도해보라든가 이런 식으로 코치를 하는 것이며 그런 코치를 직접 마음을 먹고 생활실천을 해보는 것은 당사자인 것이다. 이런 실천을 연습이라고 한다면 의사가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가 하는 것이며 연습을 하고 온 경우에야 의사의 코치가 의미 있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먹어야하는 결심이나 의지 같은 것이 금방 증상을 없앨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예컨대 우울증은 의욕저하 부정적사고 불안 자신감저하 같은 증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인데 그 의욕저하와 자신감저하에서 굳은 결심을 하고 그 의지에서 병과 싸워나갈 수 있는 투철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울증의 많은 증상과 그에 동반하는 부정적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부정적 생각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일어나는 정서와 생각을 합하여 콤플렉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콤플렉스는 나를 사로잡아서 내가 그리하지 않으려 해도 떨리게 하고 강박적 생각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충동에 사로 잡혔다고 하는 표현을 사용할 때도 있는데 같은 콤플렉스란 말을 사용하더라도 프로이트는 정신적 외상 특히 성적 충동과 관련하여 증상이 일어나는 것으로서 설명을 많이 하고 융은 인격 문제로 많이 본다.      

 이렇게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치료하는 학파에 따라서 접근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행하여야 하는 것인데 그 환자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선입견 없이 보면서 환자에게 어떤 접근이 옳은 것인가를 사례에 따라 달리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필자가 치료하는 환자들의 경우 무의식적 충동을 깊게 다루면서 그 성격의 변화까지도 목표로 하여야 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 일시적 불안 우울 불면 등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상황과 갈등을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코치를 해주는 정도에서 증상이 해소되며 그래서 생활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어린 시절부터의 상처가 뿌리 깊이 남아있고 증상이 반복되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울증이 깊고 불안이 반복되어 언제나 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를 계속 묻는 것이다. 물론 이때도 코치는 계속된다. 증상이 언제 좋아지나 하고 계속 기다리면 증상은 좋아지지 않는다고 오히려 증상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하는 일에 집중하다가보면 증상이 어느 날인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 드린다. 그리고 이 증상을 이런 식으로 극복하게 되면 병이 있었던 것이 없었던 것보다 인생에서는 플러스라는 코치도 한다. 지금은 안 믿겠지만 치유된 분들이 하시는 말씀 이라고 나는 전달자일 뿐이라고 말씀 드린다.

 그런데 사실 병이 좋아져서 어느 날 그들이 치료자를 찾았을 때는 치료자도 환자도 어찌하여서 병이 좋아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이 치료했다고 할까. 사람에게서 병은 꼭 원인결과로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나 후반기 인생에서는 병은 목적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그 병을 잘 대접(treatment)하게 되면 그것에 관련된 의미를 살릴 수 있다는 것으로 전반기에 소홀히 했던 내적 의미를 살릴 수 있게 되어 자신의 인격의 성숙을 가져온다고 한다.

 이런 인격의 성숙은 과학적 객관적 잣대로 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인격을 계발하고 성숙시킬 때만이 그 인격을 통하여 보이게 되는 것으로 상담자는 그래서 교육 분석을 받아 양성되어야 하는 재원인 것이다. 이런 인격과 인격의 상호작용에서는 환자만 변하는 것이 아니고 치료자도 변하는데 이것은 연금술에서 두 화학물질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변환에 비유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면에서의 상담자는 아마도 연금술사라고도 불리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는 단지 증상만 없애는 것이 아니고 연금술사가 철학의 돌을 목표로 했듯이 자기실현이라는 것이 상담자의 목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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