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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설雪                                                                                    

                                                                                  심수향
 
수복(壽福)글자 선명한 하얀 사발에
매실주 향이 그득했다
예닐곱에 예쁘게 취할 줄 알았던 나는
꽃보다 꽃의 향기를 먼저 배웠다
아버지 베갯모에 핀 매화꽃을 찾아
나비가 되어 날아가다 잠이 들고
나는 아버지의 빈 잔에
어린 코를 오래 묻고 꽃을 찾았다
숨이 가빠 숨이 가빠 창문을 열면
하늘가득 하염없이 날리던 눈발
열망하는 사람을 위해 꽃은 핀다는
꽃의 비밀을, 나는 그때 다 알아 버렸다.
 

●심수향 시인은 울산 출생으로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신인상과 2005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등단했다. 울산 학성여중, 동여중, 중앙여중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시인협회, 울산작가회의, 숙명문인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최종두 시인

문학은 현실과 주변상황 등에서 체험한 내용을 반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말을 전제하고 나서 심수향 시인이 갑년을 맞아 펴낸 첫 시집 '중심'에서 뽑아낸 위의 시 '매화, 설雪'은 시인이 경험하고 살아온 주변 환경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음을 본다. 언젠가 시인이 쓴 글에서 고려후기의 문신 백화헌 이조년이 쓴 '이화에 월백하고'를 아버지께서 자주 읊으셨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시인의 부친인 이경 심우빈님은 다른 많은 직함과 함께 국제로타리클럽의 울산클럽 제8대 회장을 지내시면서 아들 뻘인 필자를 비롯해서 많은 후배회원들을 불러 어울려 주셨다. 주회 때도 그랬지만 그때 마다 꼭 시조 한수를 꼭 읊으시곤 해서 어떻게 저 많은 시조를 외우고 계실까! 하고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나곤 하시던 분이셨다. 시인은 이러한 아버지를 모시고 소녀 때부터 문학적인 소양을 더욱 키우게 됐을 것이다. 매화는 북풍한설 속에서 고고하며 청초한 향기를 발함으로서 옛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꽃이다.
 그러나 매화와 배꽃은 또 좋은 궁합을 이룬다. 시인의 본가는 배꽃이 온통 동네를 덮어 장관을 이루던 여천동의 과원 중에서도 꽤 넓은 과원 가운데에 자리 잡아있었다. 시인이 어린 날 뛰놀며 지나던 그 과원엔 매화가 많이도 피어 있었다.
 울산 시민들의 마음에 아직도 살아있는 고향이 되어 자주 찾는 여천동 배 밭이다. 그 순박한 인연과 아름답던 풍광은 사라지고 없다. 인정은 더욱 살벌해졌다. 그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매화꽃처럼 청순한 시를 쓰고 있는 심수향 시인과 같은 문사들이 있기에 고향의 그 인정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 시인의 시 속에 녹아 있는 독특한 서정성도 그런 것들로 바탕을 하고 있다. 다년간 고향의 중등교단을 지키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듯이 메마른 세상에서도 일지춘심, 한 가지에 어린 봄뜻 같이 시인의 시도 향기를 더욱 뿜어내리라 믿는다. 최종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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