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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서아름

'해피 뉴 이어~!' 를 외치며 2017년을 맞이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일 년 12달 중 벌써 한 달이 지나갔으니… 그렇게 따지면 일 년도 참 짧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 올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희망찬 계획을 짜며 화이팅을 외치며 시작해야 할 시간들을 올해는 그렇게 하지 않은 내가 게으르다거나 안일하다란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간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연말이면 새 다이어리를 사서 좋아하는 문구나 명언을 적어 넣고 중요한 날들을 챙기며 여러 가지 계획들을 생각하며 들떠 했을 텐데… 다이어리조차 사지 않은 내 모습이 이젠 별로 낯설지도 않다.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듯이 계획을 세운다는 것도 그렇다. 살다보면 늘 변수란 게 있는데 그것까지 계획에 넣어 두진 못한다. 욕심을 잡아 계획을 잡고 그것에 맞춰 열심히 살려고 하다보면 중요한 것이라고 정해진 것 외에 다른 소소한 것들이 나도 모르게 무시되어지거나 나의 계획 실현을 위해서 다른 이의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게다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애쓰고 신경 쓰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다. 물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거나 하는 수많은 좋은 점들이 많기에  많은 이들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고 이루려고 애를 쓰는 것일 테지만 어쨌든 그냥 나였던 예전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많은 역할이 주어진 지금의 나는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에 약간의 집착을 하는 나는 성격 탓도 있을 테지만 아마도 그렇게 살도록 훈련된 음악가의 습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연습을 매일매일  해야 했으니 특히 소리가 나는 특성상 시간의 제약이 있어 시간을 쪼개어 써야 하는 건 당연했다. 나이가 들수록 연습해야 하는 시간도 더욱더 늘어만 가고 대학시절 유학시절 학교 연습실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그 생활들은 유학이 끝나는 삼십대 초반까지 계속 이어졌고 요즘도 연주를 해야할 때는 그때와 다를 것 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니 나에게 온전히 쓰던 시간을 그렇게 사용할 수가 없으니 시간 쪼개기가 더욱더 심해졌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모르는 사람들은 한번 연습해 놓으면 언제든 그 곡을 꺼내어 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수 백 번을 연습하고 여러 번 무대에서 연주하고 나도 몇달이 지나 다시 그 곡을 꺼내 연주하려면 또다시 연습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연습은 끝이 없다. 어떤 곡을 잘 연주해 내기까지 그 곡을 어떻게 아름답게 흘러가도록 할지 이야기를 만들고 혼자서 계획하고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이 바로 연습인데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고 또 그걸 완벽하게 지켜내려고 하다보면 자신만의 계획이나 규칙에 집착할 수 밖 에 없게 된다. 수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잘 절제하고 조절해서 음악에 적절하게 표현 하느냐가 연습의 관건이다. 그러다보니 정리해 나가고 계획해 나가는 게 나도 모르게 몸에 베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확실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날카롭던 것들이 많이 둥그스름하게 변한 건 사실이다. 내가 집착하던 것들이 하나 둘씩 없어져 버렸는지 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니 말이다. 나에게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 채워 넣었던 것들을 비워두고 그것이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나 말고 주변의 많은 요소들을 너그럽게 수용해 보겠다는 나만의 다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언제나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살면 참을 수 없는 절대적인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 불확실한 이십대를 외국에서 홀로 떨어져 살면서 마음을 다치는 일이 많아지자 언젠가 부터 늘 마음에 염두에 두게 됐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한 쪽 문이 닫히면 이내 다른 문이 열린 다는 것.' 최선책이 좋으나 차선책도 있다는 것과 그것이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닫힌 문에 너무 연연해 다른 문이 열려져있는지 그것이 어떤 문인지 조차 모르는 아둔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늘 생각을 넓게 열어 두려하는 것이다. 아무리 계획을 잡지 않으려 해도 이 글을 써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짧게 그리고 길게 머릿속에 수많은 계획을 하게 된다. 사람이 쉽게 변하던가.

 2017년 계획이 없는 내 계획대로 살아진다면 그래서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수많은 변수들이 나타나 뜻밖의 일들을 계획하게 된다면 또 그래서 재밌을 테지… 지난 십년간 해가 바뀔 때 마다 새로 산 다이어리에 적어 넣었던 명언을 빌려 적는 나의 첫 번째 기도를 올해는 이 글을 적으며 마음속에 새겨본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할 마음의 평온을 주시며,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추진할 용기를 주시며,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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