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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재완 울산시선관위 홍보주임

얼마전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은 3월 13일 이전에 탄핵심판 결론을 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자칫 재판관 정족수 문제로 인해 심판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한다.
 어찌 되었던 탄핵심판시한이 제기되었고 헌재가 탄핵의 인용을 결정하면 조기대선이 불가피하고 반대로 기각하면 대선은 12월이다.
 따라서 대선주자들에게 대선레이스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탄핵정국 탓에 대선후보들은 자신의 도덕성과 정책적 능력을 한껏 부각하려 할 것이다. 또한 갖가지 공약을 내세워 국민들의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기대와 달리 차가워 보인다. 늘 그랬듯이 표를 몰아주어도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지 않는가! "투표하는 그때 뿐이라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단언컨대, 사회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운영 시스템의 핵심은 '신뢰'이다. 신뢰는 단순히 감정상태가 아니고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신뢰는 엄연히 시스템이다. 신뢰라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차대한 사안까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가장 근간이 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기본적인 신뢰관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국가라는 공동체까지 사회전체가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가령 운전을 하면서 녹색불에 진행하고 빨간불에 멈추는 것은 운전자 모두가 그렇게 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간에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위급시 112나 119에 전화를 하는 것은 경찰이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일에서 나를 보호해 줄 것이고, 소방서도 마찬가지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런 저항없이 세금을 내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공공성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관계는 누적된 경험과 믿음이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충분히 예측가능한 행동을 취할 것이며, 그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적다는 확률과 판단은 개인을 안심시키고 사회를 안정화 시킨다.

 만약, 신뢰가 무너지게 되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의 파행으로 이어져 사회 이곳 저곳을 누더기로 만들 것이다.
 선거를 통해 민의를 묻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국민을 향해 거짓말(과장된 공약)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정치풍토에서 과연 국민과의 신뢰는 존재할 수 있는가?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인류는 7만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으로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한다.
 인지혁명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을 말하는데 우리 인류인 사피엔스는 우리보다 강했던 네안데르탈인을 이러한 인지혁명을 통해 제압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허구'이다. 사피엔스의 언어가 다른 동물(심지어 다른 인류)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는 힘이다. 이 힘이 신화와 종교를 탄생시키고 견고한 공동체를 완성했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뢰가 사피엔스의 번영을 이끈 것이다.
 우리 현대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거의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 즉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자명해진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구축해야 한다. 탄핵정국을 맞은 이 시기, 대선후보 등의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간에 신뢰는 특히 필요해 보인다.
 '신뢰는 오래된 미래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큰 선거를 앞둔 우리 모두가 되짚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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