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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념向念 - 시금치를
                                                                                      허후남
 
별 생각 없이 사 온 시금치 한 단 아무 생각 없이 다듬다 유난히 작달막하고 통통하여 싱겁다 웃고 말았는데 오천농협이라 찍힌 끈을 보니 불현듯 죽은 엄마 다시 만난 듯 하다 어느 해 허구한 날 감자 할매네 기와집에 모여 십 원짜리 화투를 치던 엄마 그 짓도 시들하다며 할마시들과 어울려 시금치 밭에 일을 나갔다지 늘그막에 돈 몇 푼 탐났다 하지 않고 순전히 새참 얻어먹는 재미라고 우기셨지만 그 속 모를까 이놈의 시금치를 보니 무릎 바싹 오그려 땅바닥에 얼금얼금 제 키를 돋우는 것조차 엄마의 삶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데쳐내면 더욱 선명해지는 푸성귀 때깔처럼. <울산 작가회 회원>


 

 

▲ 서순옥 시인

허리가 땅기거나 뒷목이 뻐근하고 유독 오른쪽 어깨가 결리거나 오십견 비슷한 증세가 오면 의심해 봐야 할 일은 장거리 운전 탓도 있겠지만, 명절에 고향 가서 고스톱에 열을 올린 사람들일 것이다. 특히 엔도르핀 수치를 올린 돈을 딴 사람보다는 돈을 잃은 사람은 중노동일 것이니 더 의심해 볼 일이다. 웃자고 한 말이지만 객지로 나갔던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교감을 나누는 현대판 가족 친목을 도모하는 격이라고 하니 그 정도 어깨 아픈 것쯤이야 즐거운 통증이 아닐까! 울그락 불그락 열을 올리며 하루 종일 쳐봐도 콩나물 한 봉지 값도 안 되는 십 원짜리 경로당 고도리지만 노년의 치매와 우울증을 달래주는 중요한 놀이문화이다.
 필자도 지난 6월에는 장기 산딸기를 무척이나 많이 먹었다. 고향에서 생산된 딸기가 마트에서도 시장에서도 눈에 띄기에 유독 많이 산 이유는 애향심이었고 향수 같은 것….
 시금치 단을 묶은 끈에서 고향을 발견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허후남 시인은 필자와 같은 고향이며 선배이기도 하다. 울산에서 창작활동을 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선후배 사이라서 동질감은 들지만,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이 입안에 들어오면 입에 찰 달라붙어 혀끝에서부터 감겨오는 오감으로 침이 고이게 하듯 허후남 시인의 시는 참 맛있다. 한 일주일 전에 전화를 걸어 프로필을 요청했더니 겸손이 묻어난 한 줄의 프로필만 보내왔다.
 요리가 잘된 맛있는 음식으로 허한 속을 가득 채우는 행복한 포만감이라면, 시를 참 잘 쓰는 시인의 시를 대하고 있노라면 영혼을 가득 채우는 최고의 행복한 포만감이 아닐까!  서순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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