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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을 만나다-꺼삐딴 리
이정희 위덕대 교수
2017년 02월 01일 (수) 19:47:49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오늘 만나볼 소설 속 주인공은 '꺼삐딴 리'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꺼삐딴 리를 끄집어내어 잘 관찰해 보고자 한다. 내가 꺼삐딴 리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당시 독서에 몰입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을 때, 한국단편문학전집 속에 있던 작가 전관용(1919~1988)의 단편소설 『꺼삐딴 리』(1962)를 읽었다. 그후로 꺼삐딴 리는 잊어버릴 줄 모르고 내 안에 자리한 것이다. 약 40여 년 만에 다시 읽어 본 『꺼삐딴 리』는 오히려 신선했다. 이렇게 짧은 소설이었나 싶을 정도로 짧은 단편소설이다. 덕분에 여러 번 읽어 보았다. 음식으로 표현하자면 아주 담백한 맛의 소설이다. 서술에 있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알맹이로만 된 듯한 느낌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고 아껴가면서, 많은 몫을 독자에게 맡긴 그런 작품이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서술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 어쩌면 구체적으로 모델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새 중학생이 된 딸아이한테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했다. 지금을 살아가는 딸아이는 이 작품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딸아이는 1시간정도 걸려 작품을 읽고 난 뒤 첫 마디가 "이인국 박사는 비열해요"였다. 그리고 "주인공을 의사로 설정한 것이 설득력이 있었어요"라고 했다.

 딸아이의 소감을 듣고 역시 이인국 박사는 비열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명쾌하게 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인국 박사다. 꺼삐딴 리는 이인국 박사를 지칭한다. '꺼삐딴'은 영어 '캡틴(Cartain)'에 해당되는 러시아어로 본 발음은 '까삐딴'인데 발음이 와전되어 '꺼삐딴'으로 통용되었다고 한다.

 이인국 박사는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외과의사다. 일제식민지시대에 제국대학을 졸업하였고 졸업할 때 부상으로 회중시계를 선물 받았는데 그것을 소중이 여기며 지낸다. 그 시절에는 잠꼬대도 일본어로 할 정도로 완전히 일본의 황국신민으로 동화되어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의 병원은 매우 청결하고 치료비도 매우 비싸다. 그의 고객은 주로 일본인이었고, 돈 없어 보이는 조선인은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입원을 시키지 않는다.

 1945년 8월 광복 후의 격변기 속에 북한에서 안주한 이인국 박사는 소련군 점령 하에 친일파로 낙인찍혀 치안대에 연행되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에서 이질 환자들이 발생하자 의사인 그는 소련군 장교의 눈에 잘 들기 위해 정성껏 환자를 치료한다. 그는 어느새 환자를 치료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련군 장교 뺨에 붙어 있는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겠다고 자청을 해서 혹 제거 수술에 성공해서 소련군 장교의 신임을 얻게 된다. 게다가 그는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시키는 등 친소파로 돌변하여 영화를 누린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6.25전쟁이 발발하고,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을 하고 만다. 이후로는 모스크바로 유학간 아들하고는 연락이 끊어지고 만다. 그는 미국 주둔 시에는 영어를 익히고, 딸도 대학에서 영문과를 택하게 하고,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미국인 사위를 맞게 된다. 딸의 이름은 일제시제 때에는 '나미코'였다가, 광복 이후에는 '코'를 떼고 '나미'로 불렀다. 이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 국무성 초청장을 받아내, 미국에 가서 거기서 반드시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작품은 막을 내린다.

 문학사적으로 '꺼삐딴 리'를 평하는 글을 보면 변절자, 기회주의자로 보는 비판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일제식민지시대, 8.15 광복, 6.25 등 격동의 역사를 겪어오면서 이인국 박사는 그때마다 친일파, 친소파, 친미파로 변신하면서 자신의 영달을 꾀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게다가 작가가 주인공을 일반 시민이 아니라 엘리트 지식인으로 그린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실제로 이런 기회주의적 삶을 산 인물들이 지식인층에서 더 많았을 지도 모른다. 더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꺼삐딴 리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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