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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발굴해 읽다보면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그림책과 왜 놀게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그림책을 읽어주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한다. 물론 나의 글쓰기 수업에도 그림책은 중요한 텍스트로 사용된다.


 '빈 화분'은 아이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그림책이다. "훗날 엄마 아빠가 되면 너희 아이들에게 꼭 읽어줘" 알아들어서 "네!" 하는지, 대답을 받아내고야 마는 쌤 땜에 "네!" 하는 것인지, 어찌됐든 교실이 떠나가도록 "네!"하는 소리에 힘입어 혼신으로 책을 읽어주게 된다. 
 이 책에는 '핑'이라는 꽃을 사랑하는 소년과 핑의 아버지, 꽃을 사랑하는 백성들, 꽃을 지극히 사랑하여 꽃으로 후계자를 고르는 꼬부랑 임금님이 나온다.
 어느 날 임금님이 내린 방이 붙는다.'나라 안 아이들은 모두 입궐하여 임금님께서 내린 특별한 꽃씨를 받으라. 임금님께서 한 해 동안 가장 정성을 다해 꽃씨를 가꾼 아이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 하셨느니라.'
 방방곡곡에서 꽃씨를 받으러 궁궐로 몰려가는 아이들 속엔 핑도 있다. 임금님에게 꽃씨를 받아 정성스레 화분에 심은 핑은 여느 때보다 정성을 쏟아 꽃씨를 가꾼다. 하지만 화분은 묵묵부답이다. 몹시도 걱정이 된 핑은 다른 화분들로 꽃씨를 옮겨보지만 역시나 화분에선 어떤 기미도 없다.


 이윽고 봄이 되자 때때옷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가슴마다 꽃이 핀 화분을 안고 궁궐로 달린다. 핑은 그 속에 낄 수가 없다. 핑의 화분은 그 때까지도 빈 화분이니까. 고개가 땅에 떨어지는 어린 아들 핑에게 아버지가 말한다.
 "정성을 다했으니 됐다. 네가 쏟은 정성을 임금님께 바쳐라"
 아버지의 말에 힘을 얻은 핑은 빈 화분을 들고 궁궐로 달린다. 저 멀리서 임금님이 마지막 아이 핑을 맞는다.             
 "너는 왜 빈 화분을 들고 왔느냐?"
 핑은 울음을 터뜨리며 빈 화분을 들고 올 수밖에 없는 연유를 임금님께 얘기한다.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임금님은 모인 아이들을 향해 외친다.
 "내가 찾던 아이가 바로 이 아이다! 왕위를 물려 줄 사람을 찾았노라! 너희들이 어디서 씨앗을 구했는지 나는 모를 일이로다. 내가 너희들에게 나누어 준 씨앗은 모두 익힌 씨앗이니라. 그러니 싹이 틀 리가 있겠느냐" 
 

 나는 '빈 화분'을 든 핑인가? 아니면 '꽃이 든 화분'을 든 수많은 아이 중 한 명인가?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질문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때 묻지 않는 순수와 동심에 가득 찬 아이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도 핑처럼 꼭 정직한 사람이 될 거예요!"
 갖가지 공약을 든 대선후보들 행보가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익힌 씨앗으로도 버젓이 꽃을 피워 국민들 눈속임에 급급한 정치인들. 결과가 '빈 화분'일지언정 꽃을 피우는데 진심과 정성을 다한다면 그는 후회 없는 지도자일 것이다.


▲ 남은우 시인
 책을 덮으며 내 자신에게 묻는다. 내 마음의 화분에는 정직의 꽃이 피고 있나? 혹, 꽃이란 것이 가시덤불이어서 타인을 찌르지는 않나? 악취가 진동하는 썩은 꽃은 아닌가? 손끝만 닿아도 부스러지는 마른 꽃은 아닌가? 작은 아이 핑의 진심이 핑, 눈물 나게 하는 이월이다. 착하고 정직한 꽃들이 피워대는 향기에 취하는 2017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은우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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