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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는 1초를 '바닥상태에 있는 세슘 133 원자에서 두 초미세 준위 사이의 전이에 해당하는 복사선 주기가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공포한 것이 머리에 맴돈다. 1초 길이를 50년 전에서야 정의했다는 것인데, 정확함을 위한 이유였겠지만, 그만큼 시간을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나마 과학적으로 시간길이를 정의하는 것은 물체의 움직인 거리를 재는 방법이라도 있기에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시대라는 사회적, 문화적 시간길이를 들이대면 온갖 현상을 정의하는 수많은 언어행위는 쓸모없는 일이 된다. 범위를 줄여, 시대를 고발한다는 혹은 했다는 미술작품으로 당시의 시간흔적 혹은 의미, 아니 찰나의 시간을 표현하는 것에 한정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지점에서 또 다른 한계의 불명확성과 능력의 부재로 인한 망각을 가지고 산다.

 이런 망각 때문에 예술가의 모든 행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그 망각을 믿는 예술가는 예술이라는 모든 행위는 정당하다는 오만에 빠진다. 따지면, 누구도 그에게 예술가 길을 가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가는 누구보다 떳떳해야하고 시대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이성과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이 때문에 예술가는 대중에게 존경받는 것이다. 누구와 협잡해서 어떤 세력에 동조해서 정치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도 인간이기에 세간의 잇속과 평가에 목맨다. 주변에서 사탕발림 소리로 속이면 잘도 속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으로 착각하고, 종내는 스스로 믿는다. 내가 예술가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 이인성 作' 경주 산곡에서' 캔버스에 유채, 136×195cm, 193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또, 뜬금없이 1953년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난 이인성을 떠오른다. 17살인가, 18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수채화가 특선으로 입상하면서 혜성같이 나타난 천재소년이라는 기사로 하루 밤 사이에 유명스타가 되었다. 곧 독지가의 후원을 받아 일본유학을 다녀 온 그는 1930년대에 조선의 유명화가라는 콧대가 하늘에 이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어이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경찰관과 시비 끝에 총격을 받고 사망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기록으로는 "내가 누군 줄 알아?"라는 이인성 말에 격분해서 경찰관이 총을 쐈다는 것이다.   

 '경주 산곡에서'라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이다. 당시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낭만적인 시각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러니까 시대의 아픔을 처절히 기록한 것도, 어루만져주지도 못했다. 만약 그때 예술가의 지원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면 이인성은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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