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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은
송은숙 시인
2017년 02월 09일 (목) 16:12:31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입춘이 되니 설이나 새해 무렵처럼 카톡이 자주자주 울린다. 입춘대길이란 멋들어진 글씨가 써진 입춘방부터 봄이 오길 고대하는 커다란 꽃다발 사진까지, 주로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들은 연두와 분홍으로 밝고 화사하다. 그중 눈길을 끈 것이 수덕사와 통도사에 왔다며 보낸 사진들이다. 수덕사는 입춘인데도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어서 검은 기와와 하얀 눈이 마치 흑백사진 같은 분위기다. 잿빛 장삼을 입은 스님 위로 보이는 마른 잎이 몇 장 붙어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 수덕사는 아직도 겨울이다. 반면 통도사 사진엔 홍매가 분홍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매끈하게 물이 오른 나뭇가지마다 끝이 봉긋하게 부풀었다. 나란히 놓고 본다면 셸리의 시 '서풍부'의 마지막 구절인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가 생각나는 사진들이다. 수덕사 팀은 다들 추풍령 이북에 사는 지라 통도사 매화 사진을 수덕사 쪽으로 보냈더니 벌써 매화가 피었냐며 놀란다. '남도엔 봄이 이르지요.'라고 했더니 꽃만 보내지 말고 향기도 함께 보내보라는 한 선배의 말씀. 자, 어떻게 카톡으로 매화의 향기를 보낼 것인가?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마침 공교롭게도 입춘 날 아이들 수업의 주제가 수수께끼였다. 그래서 이참에 봄과 수수께끼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주제를 화두 삼아 생각을 이어갔다. 수수께끼란 '어떤 사물을 빗대어 말해 그 뜻이나 이름을 알아맞히는 놀이'이다. 어떤 것에 빗대어 표현한다는 은유가 바탕에 깔려있는 셈이니 가장 문학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수수께끼를 한자로 '미어(謎語)'라고 한다. 헷갈리게 하는 말이란 뜻이다. 헷갈린다는 것은 하나의 낱말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서이다. 사실 수수께끼란 낱말 자체가 말을 알아맞히는 놀이 외에, 예컨대 '수수께끼 같은 사건'처럼 '복잡하고 이상하여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것'이란 뜻도 가지고 있으니 이중적, 다의적 의미를 가진 말이다.

 '봄'이란 낱말 역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계절의 하나인 봄 외에 도약하다, 솟구치다, 샘물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아마 봄이 샘물이 솟듯 새롭게 약동하는 계절이고 새로운 탄생의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의 경우엔 한창 때, 희망찬 앞날이라는 뜻과 아울러 '보다'의 명사인 '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봄은 '봄' 이루어지는 계절, 즉 보는 계절이다. 사실 봄을 나타내는 감각은 여러 가지가 있다. 봄나물의 쌉싸름함, 볼을 간질이는 훈풍, 알싸한 봄 향기와 같이 우리는 미각, 촉각, 후각 등을 통해 봄을 느낀다. 하지만 가장 강렬하게 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역시 '본다'라는 시각이 아닐까. 겨울의 밋밋하고 칙칙한 빛깔은 마법처럼 한순간에 하양, 노랑, 분홍, 파랑, 연둣빛으로 다채롭게 변한다. 온갖 꽃이 다투어 피니 그 눈부심에 세상이 환해진다. 실제 입춘 다음 날 통도사에 가보니 매화는 그새 더 벙글어져 나뭇가지마다 분홍 등불을 밝힌 듯 화사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인데도 매화나무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본다는 것이 그저 단순히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알아내는 것뿐인가.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도 숨어 있다." 최계락 시인의 '꽃씨'란 시에서처럼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는 것. 경계 저 너머를 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본다' 혹은 '봄'의 참 의미가 아닐까. 에머슨은 '세계 혼(世界 魂)'이란 시에서 "차디 찬 겨울의 빙하 위에도/ 여름이 빛남을 나는 보옵네/ 길길이 쌓인 눈 더미 속에/ 사랑의 장미 꽃 그 속에 있네"라고 하였다. 우리는 꽃씨 속에서 꽃과 나비를 보듯 겨울 속에서도 봄을 본다. 엄혹한 겨울이 지나면 찬란한 봄이 오리라는 것을. 얼음이 녹고 냇물이 강으로 흐르리라는 것을. 이처럼 '본다'의 진정한 의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보는 것이다. 그 희망이 바로 '인생의 봄'이고 '역사의 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은유를 아는 우리는 "일렁이는 이 가슴을 사랑이 깨워/ 우리는 영영 늙지 않으리."라는 명구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그나저나 매화의 향기를 어떻게 전할까. 송나라의 휘종은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 '답화귀로마체향(踏花歸路馬體香'), 즉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의 발굽에선 향기가 난다.' 라는 시구를 화제로 내었다. 향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라는 수수께끼 같은 화제에 고심하던 젊은 화가는 달려가는 말 뒤에 나비를 그려 넣었다. 보이지 않는 향기를 그리는 붓! 그리고 그것을 보는 눈! 이월에 나비는 아직 이른 편이라 나는 찻잔 위에 매화 꽃잎이 몇 낱 띄워져 있는 사진을 골라 보냈다. "찻잔에 앉은 꽃잎이니 이 정도면 향기가 날 법하지요." 라는 문구와 함께. 선배가 매화꽃 향기를 맡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십여 명이 모인 단톡방은 이내 이번 주 집회와 같은 다른 주제로 넘어가 의견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중이었으니까. 집회에는 참석 못하지만 이 참에 수수께끼 하나. "겨울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은?" 그렇다. 그건 바로 봄이다. 봄을 이길 수 있는 겨울은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하나로도 방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은?" 답은 '촛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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