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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이가 유아기였을 때 특별히 좋아하던 그림책이 있었다. 쿄코 마스오카가 쓰고 하야시 아키코가 그린 '목욕은 즐거워'이다. 한 때 밤마다 잠이 들기 전 읽어달라고 들고 오던 그림책이었다. 얼마다 좋아했던지 그림책치고는 꽤 많은 분량의 글을 잠이 들 때까지 반복해서 몇 번이고 읽어주어야 했다. 반복해 읽어주는 것이 지겨워서 슬쩍 한두 장 넘기고 읽으면 졸다가도 눈을 번쩍 뜨고는 돌아가서 다시 읽으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던 '목욕은 즐거워' 그림책.


 놀기 좋아하는 어린 아이에겐 욕조도 목욕을 하는 곳이라기보다 물놀이를 신나게 할 수 있는 물 놀이터다.
 발가벗고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네다섯 살쯤 되었을까. 책 속의 상민이는 물에 뜨는 오리인형과 함께 목욕탕에 들어간다. 김이 뭉실뭉실 오르는 따뜻한 욕조에서 기다렸다는 듯 크고 작은 동물이 나타난다. 먼저 큰 거북이가 나와서 인사를 한다. 이어서 경주를 좋아하는 쌍둥이 펭귄이 나타나서는 미끄러지는 비누를 먼저 잡기 위해 경주를 한다. 펭귄이 비누를 물려고 하는 순간, 미끈한 갈색 바위가 비누를 덥석 삼켜버린다.
 바위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큰 물개였다. 비누를 삼킨 물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눗방울을 만들다가 그 중 하나를 크게 키워서는 펑! 터트린다. 그 소리에 놀란 뚱뚱한 하마가 물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하마가 상민이에게 목욕을 시켜달라고 하자 비누를 수건에 묻혀 열심히 씻긴다. 드디어 헹구려고 하는데 이번엔 고래가 나타나서 분수 샤워를 시켜준다. 목욕을 끝낸 개구쟁이 친구들은 욕조로 들어가서 돌아가면서 수 세기를 하면서 신나게 논다. 이미 작은 욕조는 없어지고 여러 동물과 장난감 동물까지 함께 어울려 노는 넓고 안전하고 따뜻한 바다다.
 다 씻었으면 나오라며 엄마가 얼굴을 내밀자 동물들은 모두 물속으로 숨어버린다. 바깥에서 엄마가 들고 있는 커다란 수건에 폭 싸인 개구쟁이 상민이가 말한다. "난 목욕이 참 좋아요"


▲ 조희양 아동문학가
 이 책은 판타지의 즐거운 상상뿐만 아니라 유아들이 좋아하는 언어 표현인 말의 반복, 의성어, 의태어와 재미있는 형용사, 반대말, 수 세기 등 어휘를 발달시키는 기회까지 준다.
 아이가 그토록 좋아했던 낡은 그림책은 이제 내가 끼고 산다. 책장 청소하다가 읽기도 하고, 작품 진도가 안 나갈 때 휴식 겸 길을 찾을까 뒤적거린다. 책갈피마다 이미 청년이 된 아들이 발가벗은 꼬맹이로 엄마 앞에서 여러 동물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엄마, 목욕은 즐거워요 하면서 말이다. 조희양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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