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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모자이크
                                                                                      
                                                                                  성자현
 
한껏 무게를 견디면 먹장구름이
지상으로 빗장을 열어
조금씩 물방울을 흘려보낼 때
세상은 온통 회색이다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이라는 이름의 나도
회색이다
검은색을 덧칠하면 진회색
흰색을 덧칠하면 연회색
여전히 회색인 채로
사랑과 증오를 오가는 마음
투명한 햇살이 내 몸을
통과해 주기를 기다리는
나는 프리즘
회색 물방울이다
더 이상 광합성 작용을 하지 않는
내 숲을 헹구며 겨울비는 내리고
땅과 하늘은 울음소리에 섞여
회색의 자양분을 먹은 생명 하나가
땅 속 깊은 곳에서 내쉬는
달뜬 숨소리.
 

● 성자현 시인- 2004년 계간 '시와 비평'으로 등단. 울산문인협회, 두레문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황지형 시인

주말 남편과 낚시를 가면 오솔길을 산책하고 작은 나무숲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볕이 좋은 돌부리에 앉아 산림욕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야생적이고 자연적으로 오랫동안 햇볕을 쬐고 있으면 한 그루 개별적인 생명의 나무는 광합성을 하고 숨도 쉬게 되지요.
 안락한 침대에 잠을 자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지금의 삶이 지루하고, 피상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살아 숨 쉬는 상쾌한 에너지가 방전되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숨 쉬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 숲에도 겨울비는 내립니다.
 악과 위험을 만나도 피하지 않는 겨울비는 정수리를 적시고 뿌리를 적시고 몸속까지 파고듭니다. 봄이 되면 흰색을 덧칠하려는 의례 속에 우리는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도 시인의 숲에는 분명히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사람, 결혼 생활의 행복,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려는 기러기 한 마리는 살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암호화 된 삶의 무게도 내 것이라는 걸. 한 방울의 물에도 생명 하나를 소생시키는 천지의 은혜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숲 속에 모여 살지 않지만 달뜬 숨소리는 영구적인 원시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물방울이니까요. 황지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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