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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구제역 사태 돼지·소 330여만 마리 살처분, 2017년 1월 조류독감(AI)으로 닭·오리 3,000여만 마리 살처분, 지난 2월 구제역 발생 젖소 1,200여 마리 살처분….
 이런 뉴스를 들을 때면 지옥이 멀리 있는 곳이 아님을 실감한다. 산 채로 고통스럽게 죽는 짐승 뿐 아니라 그 일을 처리하는 사람도 죄책감과 공포로 밀어 넣는 잔인한 순간.


 이 책은 2010년 대한민국을 휩쓴, 바로 그 잔인했던 구제역 사태를 그리고 있다. 그저 수년전 얘기라면 좋겠지만, 해마다 반복돼온 슬픈 이야기다. 근본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비극의 고리는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작가는 주로 까만색과 노란색 등 최소한의 색채로 담담하게 돼지의 삶을 그려낸다. 마치 내레이션을 하듯 한 줄 한 줄 더해가는 문장은 그 실체를 과장 없이 독자에게 전달한다. 일생을 폭 60cm, 길이 2m쯤 되는 사육 틀에서 살고, 평생 땅 한 번 못 밟아보고 죽는 돼지의 삶. 새끼를 낳아도 분만 틀에 갇혀 젖만 물린 채 핥아 주거나 안아 줄 수 없는 어미 돼지의 삶. 살처분을 위해 바깥으로 쫓겨 가는 그 순간은 돼지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출해보는 순간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크다보니 항생제는 필수지만, 예방접종이 제대로 안될 경우엔 살처분 같은 참혹한 일들까지 일어난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비단 돼지만의 얘기가 아니란 점이다. 닭 공장, 개 공장 등 말만 들어도 끔찍한 사육이 성행하고, 우리는 편리하고 값싸게 이런 동물을 먹고, 키울 수 있단 이유만으로 진실을 외면한다.
 그러나 동물들의 비참한 삶은 우리 삶과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력한 항생제 투여는 그 고기를 먹는 우리 건강과 연결되고, 타 생물을 동정하지 않는 잔인한 이기심은 결국 인간 스스로에게 화살이 돼 돌아올 것이다. 다행히 일각에선 공장식 축산을 버리고 동물복지 축산을 하는 등 사람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가축을 최대한 배려하기도 한다. 최근엔 마트에서도 초록색 동물복지 마크가 붙은 고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은 제대로 된 대안이 실행 안 된 상태다. 백신은 수출문제로 찬반논란이 분분하고, 근본적으로 사육방식을 바꾸는 일은 돈의 논리 앞에서 아예 불가능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도대체 얼마나 먹고 살만큼이 돼야 이를 바꿀 것인가.


▲ 김주영기자·울산그림책연구회원
 책의 마지막 장. 작가는 어미 돼지가 새끼와 행복한 장면을 화사하게 그려놓았다.
 희망의 문장도 말미에 썼다. "사람은 다른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옳은지 생각할 수 있는 힘 또한 지니고 있다"고. 이기적이고 영리하지만, 또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은 분명 더 나은 방법으로 동물을 대할 수 있음을, 또 그래야만 한다는 걸 느끼게 하는 책이다.  김주영기자·울산그림책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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