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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월. 봄이 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온다. 꽁꽁 얼었던 자리에 꽃이 피어나고, 살랑 바람을 타고 새 소식이 찾아올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일이 펼쳐질 것이다. 두근두근 설렘의 기운이 충만하다. 약속처럼 매년 반복되는 것을 알면서도 새 계절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뭘까. 그래도 어제보다는 나을 거라는 내일에 대한 희망 때문일 것이다. 성큼 다가온 새 봄.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겨울과 봄의 경계, 이별과 만남의 사이에서 '기다림'의 이유에 대해 함께 사유해보고 싶었다.
 다비드 칼리가 글을 쓰고 세르주 블로크가 그림을 더한 '나는 기다립니다'는 지극히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다. 차라리 한 편의 시라고 해야 할 이 작은 그림책엔 온통 기다리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나는 기다립니다. 어서 키가 크기를. 잠들기 전 나에게 와서 뽀뽀해 주기를. 케이크가 다 구워지기를. 비가 그치기를.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나는 기다립니다. 사랑을. 영화가 시작되기를. 그 사람과 다시 만나기를. 나는 기다립니다. 역장의 신호를. 전쟁이 끝나기를. 한통의 편지를. "좋아요"라는 그 사람의 대답을. 나는 기다립니다. 우리의 아기를. 곧 태어날 아기와의 만남을. 아이들이 자라기를. 휴가를. "미안해" 하는 한 마디를. 나는 기다립니다. 아이들의 안부 전화를. "괜찮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이 사람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다시 봄이 오기를. 나는 기다립니다. 초인종 소리를. 아이들이 나를 보러 오기를. 새 식구가 될 손자를 나는 기다립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 인생이 기다림의 연속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때는 그저 행복한 순간만을 기다리게 된다. 어른이 되면 가장 힘들다는 사랑이라는 기다림이 우릴 맞는다. 설렘과 기대, 그리고 체념 사이를 오가는 기다림들. 수많은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을 알아보고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들. 책 속의 장면들은 모두 우리가 겪는 기다림의 과정들이다. 책장을 넘기면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된 후 겪게 되는 기다림이 이어진다. 아이들이 자라길 기다리고, 아이들이 독립한 뒤엔 소식을 기다린다. 세월이 흘러 배우자가 아프고, 이번엔 간절한 기도의 응답을 기다린다.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절실한 순간을 맞은 주인공.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면 장의차를 따라간다. 어쩔 수 없이 언젠가는 맞게 되는 이별. 그 먹먹한 순간을 작가는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상실 뒤에는 즐거운 기다림이 있다. 결혼한 아이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또 한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주인공. 하나의 기다림이 끝나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다음 기다림'이 도착하는 인생. 나는 지금 이 책의 어느 즈음에 서있을까. 언제든 누구에게나 닥칠 일들이지만 차갑거나 혹은 뜨겁거나, 기다림의 순간들과 막상 마주하게 되면 매번 당황하고, 견뎌내느라 여념 없다.


▲ 이서림 동화작가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만 한 건 각각 기다림의 순간들을 빨간색 털실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빨간 끈으로 또 다음 장면으로의 연결을 기다리게 하는 묘미를 준다. 끊임없이 이어진 이 털실은 마치 몸속의 핏줄을 연상케 한다. 우리 몸속의 혈관은 지구를 2번 돌고도 남는 길이라고 한다. 길고 긴 혈관처럼 어쩌면 끊임없는 기다림이 돌고 돌아 심장을 뛰게 하며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혈관처럼 기다림도 그러한 존재다. 책의 마지막장에는 '끝'이라는 글자에 빨간 털실을 사용해 '끈'이라고 고쳐 적었다. 기다림이 끝나면 삶도 끝난다. 살아있는 것은 곧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힘들어도 간절하기 때문에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존재할까. 쉼 없이 반복되는 삶에 이 작은 그림책이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이서림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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