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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영

# 열도무리에 고무된 친박졸파
갈수록 세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광기의 열도무리 중에 분신살기와 단지잡기를 구사하는 무리들이 속출하자 대한문 광장은 주말마다 인산인해였다. 문제는 열도무리에 고무된 친박졸파였다. 강호가 자격심사 국면에 접어들 때만해도 순실잡녀의 농단잡수에 고개를 떨구었던 졸파들이 하나 둘 깃발을 쳐들기 시작했다. 이젠 대놓고 열도무리의 결사대집회에 깃발을 들고 나가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상현졸부·원진두령·진태변사는 고정출연이고 인제소통과 문수열공은 강호각지를 순회하는 초대연사로 자리잡았다.

누리방파에서 한무리를 이끌고 내건 수정방파의 걸개가 너덜너덜해졌다. 상황에 따라 누리방파 재집결을 시도하는 무리도 등장할 기세다. 기세등등했던 파문의 초기기세와 달리 갈수록 강호의 여론은 수정방파를 외면하고 있다. 자격심사가 기각되거나 각하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야말로 정치적 파산선고다. 심사기일이 정해지고 각종설이 난무하자 일각에서는 어차피 강호의 세는 보수방파와 좌성방파의 대접전이니 조기에 보수방파로 새깃발을 만드는 쪽이 유리하다는 목소리도 튀어나오는 상황이다.

경남준공의 목소리가 그래서 더 커지고 있다. 충남방에서 터진 금괴비리에 연루돼 칩거하던 그가 무죄인장을 손에 쥐자 거칠어졌다. 대놓고 "좌성방파는 뇌물먹고 자결한 자를 두목으로 옹립한 집단"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파장은 컸다. 이른바 육두권법이다. 강호의 시전대결에서 언제나 써먹고 싶은 실전술이지만 함부로 사용하다간 역풍을 맞기 쉬워 강호고수들이 꺼리는 권법이었다. 내지르는 순간 환호하는 무리와 반발하는 무리가 극명하게 갈리기에 상황을 반전시킬 비법이기는 했다. 바로 그 육두권법을 경남준공이 구사하자 강호보수들이 흥분지수를 올리기 시작했다.
 
# 희정좌공 발목잡은 양산문공의 오판
삼철과 오방이 누리권법으로 희정좌공의 발목을 제대로 잡았다. 좌성지분의 이할을 압도하며 파죽지세로 쳐들어온 희정좌공이었지만 친문실세들의 구술잡기와 왜곡신수는 감당이 안됐다. 변방의 강호를 중원으로 떨쳐 북극지의 한파를 막고 드런대공과 시진독공의 양대구도에 실리협공으로 민초들의 삶을 살피겠다는 연정권법이 무력화되는 양상이다. 반전의 기회는 있다. 여전히 희정좌공은 좌성방파의 별장그룹인 비문연합이 점지한 신진굴기다. 그 수장이 종인대공 아닌가. 종인대공의 권법에 따라 좌성방파의 세는 달라진다. 더구나 교안대행이 대회전 출전을 접고 누리방파가 보수대권의 진을 칠 때 좌성의 꼬리표를 떼게 되면 강호의 권좌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

삼철과 오방의 비책으로 희정좌공을 묶어둔 양산문공 쪽에서 돌발변수가 나왔다. 영길묵공의 오만잡기였다. 양산문공 대회전 수장을 맡은 영길묵공이 오판을 했다. 사드병기의 조기배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자 중원세력이 준동했다. 시진독공의 강호반란 밀서가 전해지자 지레 겁먹은 좌성방파가 움찔했다. 북극지를 동경하는 발경이 무리배가 혼재해 있다는 강호의 전설이 중원사대파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설의 시대부터 중원과 북방 쪽으로는 한없이 나약했던 잡설은 여전히 강호에 필사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 판에 영길묵공이 국방민공을 독대했다. 사드병기의 조기배치는 불가하며 이는 차기권좌의 몫임을 외쳤다는 설이 돌자 보수방파 쪽에서 분기탱천했다. 양산문공 쪽의 오만잡기가 방자무례를 업고 금도의 강을 건넜다는 주장이었다. 강호는 그저 중원사대파가 여전히 존재함을 목도하며 혀끝을 찼지만 대회전을 앞둔 강호세력들은 오만잡기를 발경이론과 연좌하는 비책개발에 몰두하는 양상이다.
 
# 와대의 선택, 하야신공 꺼내드나
동래객사에 머물던 관용노공이 광화벌판에서 삭발을 했다. 와대목전이다. 영삼허공의 책사로 살다 외박등극에 노익장을 과시했던 그다. 자격심사가 다가오자 관용노공이 마지막 충언필기를 사용하기 위해 천리길을 달려왔다. 백두세결을 깎으며 그는 외쳤다. "외박의 결단이 강호의 안정을 좌우합니다. 억울하다 생각지 말고 강호권좌의 책무만 생각해 주십시오" 단호했다. 결사지세로 노려보는 눈빛은 한 마리 백곰의 묵언같은 웅공지세였다. 관용노공의 삭발권법은 와대외박에게 곧바로 전해졌다. 무수히 떠돌던 하야신공을 결국 사용하라는 주문이었다. 관용노공만이 아니었다. 보수방파의 노객은 물론 좌성방파의 비문객도들 사이에서도 하야신공이 묘책이라는 풍설이 분분했다. 문제는 율법재판소였다. 울산판녀의 퇴임을 연계한 자격심사 판결문 작성은 하야신공을 쓸 기회를 원천봉쇄할 태세였다.

며칠전 무대신공이 수정방파에서 공식적으로 하야신공을 거론하다 방출위기에 몰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대로 가다 자격심사가 퇴출인장을 찍어내리면 곧바로 감찰 포승에 노획당할 처지다. 퇴출인장이 확실하다면 하야신공이 답이지만 풍설에는 각하인장과 기각인장의 표면에도 적토분이 발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무엇보다 주말마다 대한벌에 모여드는 열도무리의 세가 잔불무리의 세를 넘어섰다는 보고는 고무적이다. 시간이 없다. 딱 3일이다. 삼일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실기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와대밀실에 보관해온 활인검을 꺼내들 시간이다. 금오박통이 생전에 남긴 가보다. 와대외박이 순실잡녀의 농단잡수가 터질 때 가장 먼저 챙겨둔 비책이었다. 좌성방파의 당랑권이나 북극지의 핵소일발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감찰포승을 벗어날 수 있는 속수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결단이다. 외사감찰이 한창이던 시간, 외박은  활인검 사용법을 만지작거렸지만 여전히 익숙한 권법은 아니다. 전전반측 잠못든 새벽, 와대비상구로 전서구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1호 전서구다. 외박은 재빨리 엽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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