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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나고, 차가운 겨울바람도 할머니의 정겨운 손길처럼 보드라워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딸애였다.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나무가 추울 거라고 겨울 내내 걱정하던 하은이는 이제는 초록 잎이 돋아난다고 안심해하며 웃었다. 그뿐인가. 나도 무심히 지나쳤던 보도블록 사이에 난 민들레에게 인사한 것도 하은이였다.
 동물들이 겨울잠을 깨고, 새순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봄에 태어난 아이여서 그럴까, 딸애는 더욱이 봄을 반겼다. 딸애가 태어난 눈부신 봄날에 처음 산 그림책이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였다.
 한편의 시처럼 다정하고 따스해서, 제목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그림책이었다. 표지에는 복슬복슬한 백곰 두 마리가 서로 얼싸안고 행복한 듯 눈을 감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곤히 잠든 갓난애에게 이 책을 조용히 읽어주면서 나는 많이 울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낯설고 힘든 육아,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의 일원에서 탈락되었다는 자괴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붙일 사람 없이 오롯이 갓난애와 지내는 외로움……. 30여년을 나만을 위한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엄마라는 역할을 덜컥 맡으면서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다.
 힘든 나날에 이 책은 큰 힘이 되었다. 엄마라는 역할에 서툴러서 절룩거리고 실수투성이인 내게 책을 따스하게 속삭였다.


 '너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이야. 더없이 멋지고 근사한 그날에 너는 기적처럼 우리에게 와주었단다.'
 딸애가 내게 온 날, 나 또한 엄마로서 다시 태어난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네가, 세상에 태어난 걸 알게 되었지. 북극곰들은 네 이름을 듣고 새벽이 올 때가지 즐겁게 춤을 추었어.'
 내 품에 안겨 꼬물거리며 웃는 아이를 보며, 비로소 내가 어미임을 느꼈다.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키우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어미임을 느꼈다. 너무나 흔해져서 잊게 되는 생명의 존귀함을, 이 책은 다정하고 사랑스런 문장과 꿈속에서 보았을 것 같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 권은정 아동문학가
 이 책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 들려주는 책만은 아니다.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을 되돌려 준다. 그 어떤 존재라도 태어난 그 때에는 북극곰들이 춤을 추고, 달과 별이 웃고, 바람과 비가 이름을 속삭이고, 기러기들이 돌아온다는 것을.
 고단한 삶에 지치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마저 없을 때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더없이 멋지고 근사한 그날 밤, 그대가 태어난 그날 밤을 기억해주기를.
 권은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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