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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프랑스 파리가 시각예술의 중심지였다. 그 이전에는 물론 로마였다. 프랑스 살롱-전에서 수상을 하면 로마에 유학을 시킬 정도로 18세기까지 로마는 정서적으로 예술의 중심으로 여겨졌지만, 불과 이백 년 만에 미국 뉴욕으로 옮아갔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예술에서도 통한다.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술, 특히 현대미술의 중심은 미국 뉴욕이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대미술의 이슈를 만들어내는 좋은 작가들이 대거 뉴욕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피해 망명하거나, 이사를 한 작가들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원했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부류였고 그 몫은 언제나 논란과 비난을 동반했다. 

 그중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필요로 했던 미국 젊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이가 마르셀 뒤샹이다. '변기'로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던 프랑스 사람이었던 그가 1912년, 요상한 그림을 그려 여러 곳에 출품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외국의 몇몇 전람회에 떠돌다가 유럽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대규모 기획전시인 '아모리 쇼'에 출품하게 된다. 이 작품으로 뒤샹은 뉴욕시민에게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여전히 사실주의 미술사조에 머물러 있던 뉴욕시민들은 그의 작품은 충격과 반란이었고, 신선하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No.2, 캔버스에 유채, 146×89cm, 1912,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뉴욕시민에게 충격을 준 작품은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의미를 남긴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2'이다. 후대에 많은 작가들이 이 작품을 모티프로 삼았다. 공간, 물체이동,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에 대한 재고, 그리고 무엇이 예술이게 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의문 등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작품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언뜻,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무언가가 내려오는 느낌을 받는 이 그림은 당시 가장 큰 이슈에 하나였던 2차원에서 움직임을 표현해내는 방식에 대한 뒤샹식의 해결이었다. 물론 그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만화처럼 움직임을 표현한 그의 그림은 두고두고 후세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일반 감상자들은 고개를 저었지만 말이다.

 뒤샹은 이 그림 다음에 '처녀에서 신부가 되는 과정'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 딱 하나 더 제작하고 붓을 꺾었다. 도서관 사서와 체스기사를 하면서 그는 다른 방법으로 예술 활동을 했다. 예술에 대한 철학 그러니까 예술존재와 목적 그리고 방법에 대한 수많은 언급으로 1950년대 미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세잔느가 미술과 철학의 연결을 시도했다면 뒤샹은 그 지평을 확 넓혔다. 그 이후 현대미술과 철학은 쌍둥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지면 철학도 미술도 어쨌거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쓸모없다 부정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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