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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 한다."

 지난 3월 10일 한국의 대통령이 파면됐다. 수많은 국민들이 조용히 촛불을 들고 수많은 밤을 밝히며 마음을 모았다. 뜻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봄이 찾아왔다. 옷이 얇아지고 얼굴에 닿는 바람이 기분 좋은 걸 보니 정말 봄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전 세계적으로 불안했던 시절, 전쟁 뒤에 꼭 찾아오는 식민지 국민들이 갈구하는 자유와 해방 등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우리나라 역시 가슴 아픈 식민지 시절이 있었고 그 뒤에 가슴 벅찬 독립이 있었고 대한민국이라는 정부가 세워져 수많은 정권이 바뀌며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희생들이 있었다. 그 수많은 희생들을 뒤로하고 2017년 과거로 다시 되돌아간 우리나라의 퇴보된 민주주의를 다시 시작하는 첫 번째 발걸음을 뗐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가슴이 벅차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번 촛불집회는 역사속의 독재 권력을 무너뜨렸던 민주화운동 중 피를 흘리지 않는 무혈혁명들과 많이 비교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27년 전 일어난 체코의 벨벳혁명이다. 공산주의 체제에 반대하여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시위가 번지며 국민들 모두가 거리로 나와 시위했다. 이 혁명의 성공으로 체코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며 체코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열린 음악제에서 라파엘 쿠벨릭이라는 체코의 지휘자는 스메타나의 '나의조국'을 연주하게 되는데 이 연주는 체코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감동시킨다. 이때 열린 음악제가 바로 '프라하의 봄'이라는 음악제 이다. 사실 이 음악제를 만든 것은 바로 지휘자 쿠벨릭이었다. 1946년 체코 필하모믹의 상임지휘자였던 그는 체코가 독일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독립을 이룬 것을 기념하여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의 탄생일 5월 12일에 맞추어 이 음악제를 만들지만 2년 뒤 사회주의 혁명으로 공산화가 되어버리자 그는 조국을 떠나 망명의 길에 오른다. 그 뒤 1968년 체코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일명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리우며 국민들에게 환영받게 되지만 곧바로 소련군대의 무력적 진압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 후 1989년 겨울 벨벳혁명이 성공하며 1990년 열린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서 40여 년 간 체코를 떠나있던 지휘자 쿠벨릭이 76세의 나이로 조국으로 돌아와 연주하니 음악제도 지휘자도 그리고 조국의 음악도 그 모든 것이 원래 있어야 할 그 자리로 돌아와 제 역할을 찾으니 이보다 더 감동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체코의 국민작곡가 '보헤미아 민족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 우는 스메타나의 '나의조국'은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불리 운다. 총 6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이 음악은 체코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를 담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 곡 비셰흐라드(프라하의 옛성)와 두 번째 곡 블타바(프라하 시내를 흐르는 강으로 체코어 '블타바'보다는 '몰다우'로 더 알려져 있다)는 체코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고 있으며 나머지 곡들은 체코의 전설과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지금도 매년 5월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축제 '프라하의 봄'의 개막식에는 스메타나의 나의조국이 울려퍼진다.

 우연찮은 기회에 나는 체코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는데 나의 무지가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프라하로 직행하는 노선도 있고 가깝게 느껴지지만 내가 유학을 결심했던 때엔 지금처럼 프라하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진 않았다. 처음 느꼈던 프라하는 그야말로 나에게 외국이었다. 궁금했고 낯설었고 불안했다. 하지만 조금 익숙해진 후 그 골목골목은 설레었고 따뜻했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결국 많은 시행착오와 값비싼 경험을 하고 나는 독일로 옮겨 학업을 마쳤지만 여전히 체코를 좋아한다. 지금쯤 프라하는 그리고 내가 있었던 브르노도 이곳처럼 봄이 찾아왔겠구나…그곳이 그립고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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