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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관리를 관장하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 MOS·이코모스)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서울시가 5년 넘게 추진해온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무산됐다는 비보였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예비심사에서 낙제점을 받아 자진 철회한 '한국의 서원'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유산위원회에 후보를 올리지도 못하게 됐다. 일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마구잡이 등재를 추진하던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 MOS·이코모스)가 이달 초 유네스코에 제출한 평가 보고서에서 한양도성에 대해 '등재 불가(Not to inscribe)' 판정을 내렸다"며 "세계유산위원회 본회의에서 등재 불가가 결정되면 해당 유산은 재신청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신청한 문화유산이 이코모스 예비심사에서 최하위 등급인 '불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문제는 이같은 문화재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정책이 왜곡돼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학계가 높이 평가하는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문화유산 등재 작업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3년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같은 대곡천 일대 천전리 각석(刻石) 유적과 더불어 2017년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다는 발표를 했다.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는 이미 2010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으며 제반 준비 작업을 거쳐 오는 2017년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신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주변경관과 역사환경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 때문에 반구대암각화는 잠정목록 등재 이후 별다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등재 작업을 추진하면서 첫단추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의 독보적이고 탁월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해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포괄적인 문화유적을 세계유산 목록으로 신청했다. 당시 일부 학계에서 반구대암각화 만으로 등재 신청을 할 경우 등재 가능성이 낮다는 오판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반구대암각화의 실질적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문화재 당국의 오판이었다. 잠정목록 등재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반구대암각화가 독보적이고 창의적이며 문화사적 가치가 탁월하다는평가를 내놓고 있다. 더구나 천전리 각석과 억지로 연결고리를 찾아 암각화군으로 묶은 것은 전략적 실패라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반구대암각화 만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했다면 굳이 주변 경관 등의 조건과 관계없이 보존 노력에 대한 울산시의 지속적인 관심과 시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렵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이번에 문화재청이 자진 철회한 한양도성은 1396년 축조된 이후 620년 동안 서울을 지킨 성벽이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뒤 지난해 9월 이코모스 전문가팀의 현장 실사를 받았다. 서울시 등은 한양도성이 △성리학과 풍수를 근간으로 축조됐고 △600년 넘게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으며 △시기별 축성 기술의 특징이 잘 남아있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코모스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다른 도시의 성벽과 비교했을 때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복원에 예산 327억원을 투입하고 관리 전담부서인 한양도성도감을 설치하는 등 '등재 프로젝트'를 가동해왔으나 결국 준비 부족으로 최하위 등급을 기록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문화재청도 한양도성의 유산등재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는 점에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문화재 정책과 뚜렷한 거리감을 보이고 있다. 문화재청이 한양도성에 대한 관심과 투자만큼 반구대암각화에 전력을 다했다면 반구대암각화는 벌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것이라는 문화재 전문가들의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가장 독보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데도 울산에 있다는 이유로, 홀대받는 것이 반구대암각화의 현실이다.
 

최근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함께 추진한 반구대암각화 보존 용역에서 생태제방안이 최적의 방안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용역 결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여전히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용역안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데다 일부 단체들의 반발 등이 걸림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문화재청의 의지다. 문화재청이 반구대암각화 자체의 보존에 집중하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반구대암각화 보존 해법은 쉽게 결론이 날 수 있다. 이는 곧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으로 서원과 한양도성의 실패 이후 침체된 우리 문화재계에 희소식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잘못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문화유산 등재 정책을 하루 빨리 수정하고 반구대암각화 만을 바라보고 집중하는 정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문화재청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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