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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최옥연 수필가
2017년 03월 30일 (목) 17:30:07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햇볕이 따뜻하다. 볕을 끌어안고 창을 보고 누웠다. 집이 남향이라 따뜻한 볕이 하루 종일 집안에 머문다. 평일에는 집에 있어 본 적이 없고, 주말까지도 대부분 바쁘다 보니 햇살을 받으며 누워 있을 시간은 좀처럼 없다. 편안함에 눈을 감았다. 조금 있으니 볕이 얼굴을 살살 만지는 듯하다. 눈을 떴다. 높이 달린 빨래 건조대가 눈에 들어온다. 너무 높이 달려 있어서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바닥에 이동식 건조대를 펼쳐놓고 빨래를 널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 건조대 끝에 때깔 좋은 양말 한 짝이 걸려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동동거리며 깨금발로 서서 양말을 내렸다. 저런, 며칠 전에 굴러다니던 한 짝을 버린 양말과 같았다.

 우리 집 양말들은 늘 하나씩 뒹군다. 외짝만 담아두는 여분의 바구니가 있을 정도이니 말해서 무얼 하겠는가, 매번 세탁을 하고 나면 짝 없는 양말이 한두 개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다음번 세탁을 하고 나면 나오겠지 싶어서 챙겨둔 짝 없는 양말이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버리게 된다. 하필이면 버린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남은 하나가 건조대에 걸려 있었다. 별거 아닌데도 좀 허탈했다. 그래도 양말 한 켤레가 커피 한 잔 보다 비싸지는 않겠지 싶다. 커피보다 싼 양말을 가지고 수선스럽다고 하겠지만 양말 한 짝도 버리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의 반짇고리에 늘 담겨 있던 구멍 난 양말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농사를 짓고 행상을 하며 살림을 꾸려가던 어머니의 고된 노동은 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잠깐의 틈도 없이 날마다 선반에 올려 두었던 반짇고리를 내렸다. 양말 조각을 꺼내 떨어진 양말 구멍 크기에 맞게 무딘 무쇠가위로 둥글게 오려서 덧대었다. 흐릿한 불빛에서 더듬더듬 바늘에 실을 꿰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했다. 지쳐서 어깨를 늘어뜨리고 헤진 양말을 깁다가 꾸벅꾸벅 조는 것은 다반사였다. 졸음 속에서 옷과 양말을 깁고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면 나는 당신이 늦은 밤에 기워둔 양말을 신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어머니가 주신 반짇고리를 꺼냈다. 어머니의 반짇고리는 자투리천이나 바느질에 필요한 실, 골무, 가위 등을 담아 놓는 방물장수 바구니와 다르지 않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넓고 둥글납작한 반짇고리에는 세월만큼의 흔적들이 물들어 있었다. 그 밖에도 언제나 떨어진 양말들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며 가득했다. 양말이 달아서 구멍이 나면 반짇고리에 있던 양말 조각을 덧대어 구멍을 메웠다. 색상이 같거나 비슷한 것도 있지만 기워야 할 양말과 색상이 너무 대조적인 검정 색에 붉은 조각으로 깁게 되면 난처한 경우가 많았다. 집에서 신고 다니는 것이야 구멍이 나거나 색상이 조금 달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학교에 갈 때가 문제였다. 차라리 양말을 신지 않고 맨발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언제나 깁은 양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기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복도에서 신발을 벗고 교실에 들어가면 온 신경이 발에 있어서 다른 것에 집중을 못하기도 했다. 희미해져가는 오래된 기억이나 아련하다.

 그 기억 끝에 나도 아이들의 양말을 꿰매준 적이 있다. 남매가 어렸을 때였다.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은 주변에 논과 밭이 있는 단독이었다. 별달리 놀이가 없으니 동네 조무래기들과 날마다 흙투성이로 다니는 아이들은 새 양말도 넘기지 못하고 엄지발가락에 구멍을 내고 다녔다. 사흘돌이로 구멍이 나는 양망을 한 켤레씩 버리려니 조금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가끔 한 번씩 표 나지 않게 작은 구멍을 바탕색의 실로 꿰매고는 며칠을 더 신게 했다. 양말을 기웠던 것은 유년의 기억도 한몫 했다.

 요즘은 옷이나 양말을 기워서 입거나 신는 경우가 없다. 몇 번 입지 않은 옷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빠르게 도는 유행이 지나면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애써 양말짝을 찾던 모습에 잠깐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내친김에 저만치 오고 있는 봄맞이 옷 정리를 했다. 장롱에서 햇볕 구경도 못하고 동절기를 보낸 옷들을 꺼내 베란다에 널었다. 유리를 통과한 따뜻한 볕과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으로 묵은 장롱 냄새를 말렸다.

 소소한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주부로 사는 것 같았다. 남편은 늘 나더러 주부 맞는지 농담에 타박을 섞는다. 하루 종일 녹록치 않은 바깥일에 시달리다 보면 살림이 멀어지게 된다. 늦게 집으로 돌아와 동분서주하다 보면 미처 세탁을 하지 못해서 아이와 남편은 신을 양말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늘 허덕이는 나에 비해 어머니는 나보다 더 바쁘게 살았다. 밤늦은 시간까지 안팎으로 바쁘게 일을 해도 다음날 입을 입성을 챙기지 못해 애를 태우게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일의 양보다도 정신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나는 어머니처럼 치열하게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바느질이 힘들다고 평생을 쓰시던 반짇고리를 내게 주셨다. 당신이 밤마다 끌어안고 무엇이든 깁거나 만들어내던 반짇고리다. 눈에는 익으나 쓰지 않는 오래된 바느질 도구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릴 때 만들어준 앙증맞은 복주머니도 들어있다. 양말을 기워주던 어머니의 손길들이 느껴졌다. 내친김에 양말도 기웠다. 텃밭 일을 할 때 신어도 될 것 같다. 그때는 양말도 기워서 신고 새 옷 보다 반짇고리를 수없이 드나들어야 했던 헌 옷으로 살았다. 그래야 살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천을 덧대어 꿰매면 양말의 본살보다 더 두꺼워서 차가운 고무신을 신은 발을 따뜻하게 감싸줬다. 양말에 고무신을 신고 들일을 다니던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의 마음에도 구멍이 생기게 된다. 그 구멍으로 생긴 상처를 양말을 깁듯 꿰매서 어루만지며 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취한 휴식이지만 마음도 편안하고 몸도 가뿐하다. 오래된 기억속의 그리움과 추억까지도 하루에 펼쳐놓고 볕을 쐬게 한 것 같다. 팽팽해진 내 일상도 살짝 풀어놓았다. 무겁던 몸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낮이 제법 길어진 것을 보니 춘분쯤 되는 것 같다. 어머니는 지금쯤이면 많은 시간을 밭이랑에 이른 봄을 심느라 등을 붙이고 있을 것이다. 지는 하루가 볕을 조금씩 거두기 시작한다. 고만고만한 나이에 온 들녘에 내리 쬐는 햇볕을 받으며 비탈진 골목을 뛰어다니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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