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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르 떠는 언어들

채호기
 
나비가 제 심장의 무게에
짓눌려 날지 못하고 조용히 
필사적으로 날갯짓하듯,
어떤 말은 제 소리에
귀 기울이며 두려워 떤다.
 
꽃잎 위에 나비 신비하고
화려한, 펼쳐진 날개의
무늬, 표본용 침에 고정된
파르르 떠는 언어들.
 
입속에 발음하지 않은 말들
돌에 짓눌린 억눌린 숨소리
날갯짓 없는 혀
 

● 채호기 시인- 1988년 '창작과 비평' 등단, 2007년 제8회 현대시작품상, 2007년 올해의 출판인상, 2002년 제 2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 황지형 시인

꽃구경이 한창이다. 봄비도 내린다. 꽃잎이 파르르 떨어진다. 그 모습이 나비 같다. 나무 아래 고여 있는 웅덩이에도 아직 말해 보지 못한 말들이 부유하고 있다. 제 삶의 무게에 따라 꽃잎의 모습도 달리 보이겠지만 버거운 나날을 잠시 내려놓고 필사적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벌들의 합창이 헬리콥터를 연상시키는 꽃나무 아래에서 나비의 날갯짓으로 착각하는 최면에 걸릴지도 모른다. 이즈음 가는 곳마다 명소다. 만개한 꽃보다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올 수도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나비의 몸짓은 자아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거울이자 통로이다.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한 개개인은 필사적으로 성장했고, 결혼했고, 가족들을 부양했고, 그리고 친구들과 이웃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양식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성공적으로 경쟁하고 협동하는 한 개인의 몸짓은 제 소리에 침잠할 때 비로소 공공의 기억으로 옮겨진다. 말할 능력이 없어서 말을 못하는 그대가 아니다. 나비의 날갯짓은 신체의 중요한 부분 '혀'로 행간을 옮겨간다. 타인에서 타자로 돌고 돌아 온 말은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나비는 침이 없다. 표본용 침에 고정된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획득할 때 생명은 파르르 떨 수밖에 없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는 말하는 방식도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에서 자아의 놀라운 위력이 발휘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경험은 어떤 날갯짓 못지않게 깊고 고요한 싹을 틔운다. 고뇌는 개인 차원의 불행이라는 인식이 고정된 사회에서 타인의 처지와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작품의 의도를 완전하게 이해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삶의 무게가 두려웠고, 표본용 침에 고정되었고, 돌에 짓눌렸어도 나비는 꽃이 되고 혀가 되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역동성을 갖추게 된다. 황지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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