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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새
윤경화 수필가
2017년 04월 13일 (목) 18:12:42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졸지에 조카를 떠나보내고 처음 나선 아침 산책길에 딱새를 만났다. 참 말이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을 참았던 수다쟁이처럼 지저귀는 소리가 소란스럽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평소와 다른 친밀감이 들어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되도록 짧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침밥 먹었니? 왜 혼자야?" 마치 딱새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말을 섞었다. 물론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라 이해를 받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내 감정을 담아 자주 만나는 사이처럼 말을 이어갔다.

 말하자면 나는 소리라는 수단으로 녀석을 조카인 양 소통하는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생각을 리듬에 실어 한참 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고 났더니 딱새와의 거리가 제법 가까워진 듯했다. 내일 아침에 만나면 녀석을 잘 알아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도 훈련의 산물이다. 좋은 감정으로 따뜻한 말과 시선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감정의 근육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진화하는 것이다. 계획에 없던 휴일이라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나에게 딱새가 궁금한 듯 "오늘 어쩐 일이세요?"라고 물어온다. 토요일에 쉬는 일이 없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소리라고 풀이해 본다. 제법 몇 마디를 구시렁거리고 있자니 유대감마저 드는 듯하여 파르르 떠는 녀석의 꼬리 놀림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딱새와의 만남이 무연하지 않은 듯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 육남매는 모두 출가를 해 가정을 가지게 되자 제 앞가림에 바빠 자연스럽게 만남도 소원해졌다. 어느 때는 서로 서운해 하는 눈치를 주고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살이에 몰두해 왔다. 거기에다 나이가 드는 만큼 늘어나는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예전의 보드라웠던 관계는 잊은 듯 무덤덤함에 익숙해진 듯도 했다. 사람 사이에 이런 시간이 쌓인다는 것은 송진이 굳어지듯 마음이 경직되어가는 일이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점차 데면데면하게 자신의 앞만 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고라도 주려는 것이었을까. 우리들 앞에 감당할 수 없는 풍파가 닥쳤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여 멀리서 봐도 늘 빛이 나던 조카에게 뜻밖의 변고가 생긴 것이다. 나를 견고하게 둘러싸고 있던 안일의 벽에 균열이 생기고 침침하게 주변을 가리던 눈앞의 차양이 날아가 버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편하고 성가시다며 외면했던 순간들이 종양 덩어리보다 잔인한 결정체가 되어 우리 가족들의 가슴을 후려쳤다.

 조카는 심장마비로 홀연히 떠났다. 그 아이는 서른 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 곁에 머물다 갔다. 한 줄기 바람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떠날 줄은 몰랐다. 나는 '다음'이란 명사가 가진 막연한 순서와 불확실한 시제의 그릇에 현재의 몫을 무책임하게 무시로 던져 넣고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지금'에 충실하지 못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펼쳐진다. 우리 형제들은 통곡했다. 천벌이 따로 없었다.

 이카루스처럼 큰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오른 모습에 우리는 기쁨과 감동을 맛보기 시작했었다. 나는 두 팔로 안을 수 없을 만큼 자란 조카를 장승처럼 세워놓고 앞에서 한 번 안아주고 뒤에서 한 번 더 안아주며 성장을 확인했었다. 멀리서 봐도 꼭 내 동생을 닮아 내 혈육이라는 뿌듯함을 주었다. 덩치에 비해 눈이 작아 웃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사랑스럽기도 했다. 자신의 꿈과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서른의 청년이 아니라 꿈을 꾸는 소년처럼 순수해서 마치 내가 소녀가 된 듯 처진 눈꺼풀 사이로 끝없이 바라봤었다.

 그럼에도 내 심안의 근육은 경직되어 주변을 살피는 일에 소홀했었다. 한 번 더 안아주고 작은 눈을 바라보며 함께 웃어주는 시간을 자주 갖지 못했다. 나는 '다음'이란 불확실한 시제를 공수표 날리듯 겁 없이 마구 썼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조카들과 여행을 하고 영화를 봐야지. 이른 아침에 함께 산책을 하며 하루를 맞아야지.' 이런 생각들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 생각에만 갇혀 고인 물처럼 한 곳에 머물며 주문처럼 '다음'을 되뇌고 있는 동안 아름답고 좋은 순간들은 망설임 없이 지나갔다. 그 사이 훈련되지 않은 내 의식의 날개는 굳어져 삐걱거리거나 둔탁한 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나의 이런 삶의 태도가 어찌 가족과의 관계에만 한정되어 있겠는가. 니체는 인간의 삶은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했다. 신비롭고 복잡 미묘한 문제들의 조화로운 흐름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예술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우리는 벌새처럼 끊임없는 날갯짓으로 이 순간을 단련하지 않는다면 끝을 보고야 마는 것 또한 인생이다.   

 현실에 밀착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가. 우리 형제들은 패잔병처럼 아이는 납골당에 두고 서른 해의 기억과 추억을 유골함처럼 안고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상처의 지독한 통증과 그리움에 익숙해지는 훈련이다. 산책길에 딱새를 만났을 때 "네 친구 천사는 이뻐?" 하고 이물 없이 물어볼 수 있는 날이 있으려면 세월이 얼마나 흘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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