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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열기로 즐거웠던 지난 17일간이었다. 시원한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딴 유도 대표. 동쪽에 살면서 화살을 잘 다룬 동이(東夷)족의 후예임을 확인해준 남녀 양궁선수단. 세계를 들어 올린 여자 역사. 서구인이 독점할 것으로 여겨졌던 수영의 벽을 허물어뜨린 마린보이. 아홉 차례 싸워서 모두 이긴 야구 대표단. 이 밖에도 배드민턴ㆍ사격ㆍ태권도 등 각 종목에서 쾌거를 이루었다.


 모든 성공에는 스토리가 있다. 한 편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감동을 준다. 신체적 한계는 물론 주변의 지원도 변변찮았다. 주인공은 금메달의 꿈을 품었지만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좌절의 순간도 적지 않았다.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운이 따랐다. 승리의 감격은 그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그리고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하지만 금메달은 오직 한 사람, 한 팀에게만 해당된다. 간발의 차이로 뒤를 이은 선수들은 은메달과 동메달을 손에 쥔다. 이들은 보람과 더불어 아쉬움을 강하게 풍긴다. 어느 종목이든 결승전과 준결승전에 진출한다는 것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적은 기회다. 실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의 승자는 아니었다. 백지장 하나에 불과한 기술이나 또는 체력의 차이, 또는 심판과 경기장의 분위기 등 그날의 운이 금과 은, 그리고 동을 갈랐을 뿐이다.


 올림픽은 인간적이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안타까움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다. 앞선 대회에서 화려한 실력을 보여줬지만, 새로운 주인공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또는 상대적으로 무명의 선수와 팀이 연전연승하며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는 모습이 부럽지만 패배자를 격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올림픽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경기장에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와 팀이다. 그들은 자신의 종목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최고는 겸손에서 나온다. 항상 스스로 부족한 점을 돌이켜보고 고치기 때문이다. 최선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스스로의 실력을 믿고 십분 발휘하기 때문이다. 금메달리스트가 승자인 것은 뛰어난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 뒤에 있는 겸손과 자신감 때문이다.


 둘째,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와 팀이다. 국가를 대표하여 모였다. 개인과 국가의 영광과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뛰고 맞섰다. 올림픽 경기에는 승리와 똑 같은 수의 패배가 있다. 정정당당한 패배가 없다면 누가 승리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승자와 더불어 경기를 빛낸 모든 선수들 또한 승자다.


 셋째, 올림픽을 지켜보고 성원한 세계의 모든 시민이 승자다.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에서부터 폐막식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경기는 텔레비전으로 중계됐다. 수영과 육상에서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순간부터 구기 경기의 골 장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흥미진진한 장면이다. 이러한 장면을 즐기고, 응원한 시민이야말로 인류의 축제를 만끽한 승자다.


 올림픽에 승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패자도 있다. 승자들은 올림픽의 순수성과 인간적 측면에 주목한다. 이에 비해 패자들은 올림픽의 상업성과 정치적 측면에 주목한다. 상업성은 올림픽의 가치를 메달의 색깔에서 구분한다. 메달리스트가 광고 모델로 변신하여 벌어들이는 돈이 상업적 기준이다. 정치적 측면은 올림픽을 특정 목적에 이용하는 행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의 독무대였다. 올림픽을 통해 독일의 야욕을 세계에 과시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세계를 위협했다. 1945년 히틀러의 파시즘 정권은 패자였다.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평가 역시 후세에 이루어질 것이다. 개폐막식에서 중국의 문화적 전통과 역량이 잘 드러났다. 중국이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민주화와 더불어 세계 평화의 주역이 될 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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