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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옥 북구 어물보건진료소장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인생의 여정을 함축성 있게 표현한 문장이다. 요즘 우리나라 사회의 풍속도와 가족제도의 변화 속에서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온 이 지역의 실버세대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곳 울산 북구 어물보건진료소에서 28년을 근무해오면서 이 지역 실버세대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떠올리며 보건진료소의 역할과 나의 소명을 되돌아본다.

 북구에는 2개의 보건진료소가 있다. 북구보건소 산하에 내가 몸담고 있는 어물보건진료소와 신명보건진료소가 지역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사실 보건진료소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진료소를 찾는 분들은 대게 동네 어르신들이다. 보건소니 건강상담은 당연하고 집 안이나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 대한 상담도 어느새 내 몫이 됐다. 28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어르신들의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갔다.

 보건진료소는 80년대 초반 우리나라 농어촌 의료취약지역 주민의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했다.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이다 보니 1차 진료의 요구도가 컸다. 긴 세월동안 함께 해오며 지역사회 주역으로 활동해 오던 주민들은 어느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 되어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UN에서 규정한 고령화 사회의 분류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이 지역의 노인인구 비율은 3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지 오래다. 치매 등 만성질환으로 요양시설입소가 늘어나고, 독거노인들은 자녀들로부터의 소외감, 질병과의 싸움으로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어른이 돼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삶을 살다보면 마음도 넓어지고 강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어르신들은 마음이 여려져 눈물도 많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핵가족화 되어 가족의 개념조차 변해버린 사회현실 속에서도 내 자식만큼은 효자라서 나를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다리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저들이 스스로 노력해 이 상황을 극복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 보건진료소가 해야 할 역할을 '함께하는 보건진료소'라 명명하고 여러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 우선 연중 찾아가는 보건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계신 집이나 경로당을 직접 찾아가 인지활동훈련과 골반근육 강화운동, 입체조, 건강박수 등을 진행해 건강증진을 돕는다. 또 당사마을 독거노인과 80세 이상 희망 어르신을 대상으로 매일 안부를 확인하는 사업도 진행중이다. 사업 초기에는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어르신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다. 보건진료소는 주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상담해 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독거노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자발적 그룹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기대 이상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고, 본격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자식들을 대신해 가까이서 어르신들의 안부도 매일 살핀다. 전화를 걸기도 하고 직접 찾아가 어르신들을 만나기도 한다. 자발적으로 결성된 그룹에서 어르신들은 소외되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해 온 지 28년이다. 지금 바람이 있다면 인생을 앞서 살아온 실버세대의 삶의 지혜가 퇴색되지 않고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년에 어물보건진료소도 '함께 손잡고' 걸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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