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문부윤 하빈갤러리 실장

앤디 워홀은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예술은 우리의 일상과 떨어져 있는 생산 활동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예술적 감각과 디자인이 일상에 녹아든다 해도 사람들은 이를 순수 예술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생활에 녹아들어 응용되어진 예술이기 때문이다. 순수예술과 예술을 응용한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는 경제력을 제외한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예술가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전부 담아내느냐 아니냐에 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은 소위 팔리는 작품과 안 팔리는 작품을 만든다. 이 둘의 차이는 제법 커서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동일 인물이 만든 것이 확실한지 의문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보니 이 사회에서 몇 십 년간 이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모든 예술가들이 경제적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서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이다. 거의 대부분 다른 사람 밑에서 윗사람이 요구하는 작품을 만들거나 잘 팔릴 수 있을만한 작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러한 현상은 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힘들게 할 것이다. 사회에선 경제력을 요구하고, 순수예술은 점차 명맥이 가늘어질 것이며, 사람들은 불신의 시선으로 예술품을 바라볼 것이다.
 예술이 하고 싶었던 사람은 도중에 포기를 하고, 자녀가 예술에 적성이 있다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몇 해 전 조영남 위작사건으로 미술계가 떠들썩했었다. 유명한 사람이 덜 유명한 사람의 그림을 자신의 그림으로 속이는 일들은 아주 오래전, 몇 세기 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기도 하다. 무명작가의 작품을 비싸게 사려는 사람은 없다.
 천경자의 미인도와 연루된 일들도 사람들의 불신만을 만들었다. 이 와중에 예술에 자신의 인생을 전부 투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감히 예상하기 힘들다.
 이는 예술의 빈익빈 부익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사례의 측면으로, 점차 무관심으로 일관 되어가는 예술계에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관심이야말로 예술과 일상의 융화가 이뤄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예술품은 한 국가의, 한 도시의 문화를 상징한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그러하고, 루브르박물관의 피라미드가 그러하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도, 미켈란젤로의 모나리자도 그러하듯 예술은 시대와 장소와 사람들을 대변한다.
 못난 정치인이 있으면 투표로 끌어내리듯,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예술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내 생각은 어떠한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 하게 되면 그 예술들은 곧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의 대표 예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관심과 점차 멀어지면 제2의 강남스타일 조각상과 같은 작품들이 연이어 나타날 것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